오피니언 취재일기

오바마 마케팅보다 중요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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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탄생에 전 세계가 흥분에 휩싸였다. 인종 장벽을 뚫고 세계를 주무르는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은 마땅한 일일 터다. 마이너리티의 성공담은 그 자체로 장삼이사의 감성을 건드리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 당선을 둘러싼 한국 정치권의 반응은 다소 낯뜨거운 구석이 있다. 대중을 파고드는 오바마 열풍에 편승하려는 움직임만 읽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권에서 새로운 미국 정부에 대한 차분한 분석과 한국 사회의 ‘변화’에 대한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오바마 개인과의 친소 관계를 홍보하려는 목소리만 들리고 있다.

오바마의 소속 당명과 같아서일까. 국내에선 민주당이 노골적인 ‘오바마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스스로를 ‘한국의 오바마’라 부른다. 그는 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오바마는 한국의 386세대와 같은 세대로서 나의 삶과 유사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6월 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오바마 돌풍을 예견했다”며 자신의 ‘예지력’을 홍보했다.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도 ‘오바마 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전여옥 의원은 오바마 당선이 확정된 5일 자신의 홈페지에 “오바마는 한국의 사이비 좌파와 다르다”며 “오바마의 당선이 한나라당에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전·현직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청와대와 봉하마을에선 ‘이명박=오바마’ ‘노무현=오바마’란 등식이 튀어나왔다.

청와대에선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반전의 스토리, 강한 어머니 등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인은 닮은 꼴”이란 주장이 나온다. 이 대통령도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꼴”이라고 말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도 “(오바마와 노 전 대통령이) 정치권의 비주류에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인물로 급격힌 부상한 점과 인터넷을 이용했단 점이 유사하다(천호선 전 대변인)”고 주장했다.

세계의 스타로 떠오른 인물과 “닮았다”는 말은 누구나 듣고 싶을 테다. 하지만 갑작스레 쏟아지는 정치권의 ‘오바마 마케팅’은 가볍고 쑥스럽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개인이나 정파적 이익으로만 오바마의 등장을 바라볼 한가한 때가 아닌 때문이다. FTA 등의 한·미 관계, 북·미 관계에선 이제 변화의 파고가 거세질 수밖에 없다. 차분하고 진지하게 오바마 이후의 정책 대안을 고민하는 정치권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정강현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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