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마을/문자] 문자 장난치다 된통 당한 남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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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은 소심한 편이라 아이 운동회에 가서도 자진해서 줄다리기 한 번 나간 적이 없다. 그런 남편에게도 장점이 있으니 바로 유머감각과 장난끼다. 남편은 유독 잘못 걸려온 전화나 문자에 집착하는데, 필요 이상으로 상냥하고 친절하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잘못 걸려온 전화에 너무나 친절하게 대답을 한다. 대부분 “아닙니다. 잘못 거셨네요” 하고 끊는데 남편은 “아~ 네. 김아무개냐고요? 아닙니다. 저는 김철수입니다.” 상대방이 “죄송합니다. 잘못 걸었네요” 하면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아휴~, 그럴 수도 있죠. 괜찮습니다. 네~ 안녕히 계세요” 이런다.

그러던 남편이 제대로 당한 적이 있다. 큰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어느 날 띵동! 하고 문자가 왔다. ‘아버님, 어머님 잘 계시죠? 저희 아이들도 잘 있고요? 많이 보고 싶네요. 사랑합니다’. 처음 본 전화번호라 갸우뚱하던 남편은 ‘아, 주말부부인 모양인데 아내가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는 게 나에게 잘못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냥 지나칠 남편이 아니었다. ‘아버님은 돌아가셨고요. 아이들은 잘 있습니다. 저도 보고 싶네요. 사랑합니다’. 3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올리며 남편은 성심성의껏 답장을 보냈단다. 최소한 잘못 보낸 것 같다는 답장이라도 기대하던 남편은 답장이 오지 않자 조바심이 났다. 기다리다 지친 남편은 먼저 ‘근데 누구세요?’라는 문자를 다시 보냈다.

조금 있다 답장이 왔다. ‘저… 희주(우리 애 이름) 유치원 선생님인데요? 혹시 희주 아버님 휴대전화 아닌가요?’

아차 싶더랍니다. 당황해서 어떻게 하냐며 전화 온 남편에게 “난 모른다. 창피해서 어디 유치원에 갈 수나 있겠느냐”며 화를 냈다. 유치원이 방학 중이라 선생님께서 아이 잘 있느냐고 안부 문자 보낸 건데… .

유치원 선생님은 남편의 문자를 받고 “희주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긴 줄 알고 너무 많이 놀랐다고 했다. 오랜만에 남편에게 문자 한번 보내봐야겠다. 어떤 답장이 오려나.

이진희 (39·전주시 완산구 삼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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