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내년경제 처방 低성장이냐 성장유지냐-低성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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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상수지적자가 연말까지 2백20억달러를 넘고 이대로 가면 내년에도 막대한 무역적자가 예상되고 있다.그러나 일정한 성장을 유지하다 보면 무역수지적자를 줄일 수 없고 그렇다고 성장률을 낮춰 저(低)성장정책을 쓰자니 대선이 있는 해에 실업과 불황이염려된다.정부내에서도 적정성장을 유지해야 하겠다는 재정경제원과,물가안정과 무역수지적자 축소를 위해 저성장정책을 검토하자는 한국은행으로 의견이 나뉘어 있다.이견을 보이는 양측의 경제적 논리를 소개한다.
[편집자 註] 올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국제수지적자가 초미의관심사가 되고 있다.한국은행 추계를 보면 경상수지적자가 연말까지 2백20억달러에 이를 것이며,외채총액은 벌써 1천억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내년의 전망도 매우 어둡게 보인다.성장률 6.
5% 수준에서 경상수지적자는 1백80억달러로 추정되고 있으며,조세연구원은 2백70억달러까지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이런 형편이니 대통령의 .적자 절반 줄이기'지시가 없더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 됐다.수출이 잘되고 소득이 올라가면 외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들여 빚도 갚고 그만큼 나라경제는 부(富)를 축적하게 된다.일본이 그렇고,대만이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정은 어떤가.우리나라 경제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중화학공업제품이 수출을 주도하는 교역구조에서 기술개발이 미흡하거나 부진해 지금까지 기계설비.소재및 부품의 국산화가 만족스럽지 못하고,이로 인해 수출이 늘면 늘수 록 수입도 따라 늘어나니 흑자기조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거시경제 운용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성장과 국제수지가 상충관계에 놓이게 된 것이다.한국은행의 추정을 보면 내년의 성장률이 7%일때 경상수지적자는 1백95억달러,6.0%일때 1백50억달러,그리고 5 .5%일때 1백30억달러가 될 것이라는 세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대통령의 지시에 따른다면 당연히 가장 인기가 없는 세번째 저성장안을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선거가 있는 내년에 과연 정부는 유례없는 5.5%의 저성장을 감수할 것인가.대통령의 지시가 이런 상충관계를 감안한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정치논리가 항상 경제논리를 따돌리는 우리네 현실에서 적자 절반 줄이기는 대통령의 지시로 끝나기가 십상인 것같다.그렇다면 7%성장에 경상수지적자 1백95억달러라는 경제운용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경제전문가나 노련한 경제관료들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이럴 때는 다시 경제원론을 들여다 볼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한 교과서적인 해답은 두가지다.조금은 진부하면서도 보편적인 성장과 안정의 절충안이 하나 있고,두번째 해답 으로는 먼저 내년의 적정성장률을 정하고 미시적인 경상수지 방어책을 마련하는 방안으로 필자는 후자의 접근방법을 권유하고 싶다.
그렇다면 내년의 적정성장률은 어느 수준일까.시장경제에서 적정치를 구하는 것은 엄밀하게 볼때 어려운 계산이지만 통상 잠재성장률로 대치할 수도 있다.잠재성장률이란 국내의 자본과 노동,그리고 기술을 십분 활용해 실현될 수 있는 수치를 말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6%내외 수준으로 추계되고 있다.최근 우리나라 경제는 성장잠재력 이상의 고도성장을 시현했고,이로 인해.한국병'이라고 하는 고질적인 적자기조와 고비용구조가 정착됐다.따라서 앞으로는 어렵고 인기가 없어도 안정기조 를 바탕으로 내실있는 경제운용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틀 안에서 기술혁신과 개발로 기계설비.부품및 소재산업의 수입대체가 이뤄져야 하고 기업의생산성 제고,가계저축의 증대 및 무역외수지 관리를 위한 미시적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내년 선거의 해를 맞이해 과연 얼마만큼 경제논리가 먹혀들어 갈지 문민정부의 의지가 시험받게 된다.대통령의 지시가 비슷하게실현되기를 바란다.
李 〈경희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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