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세르비아사태 민주화불꽃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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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는 2주일 전부터 연일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 사회당이 패배했던 지난달 17일의 지방선거를 무효화시킨 후 다시 선거를실시해 승리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에 대해 비난을 퍼붓고 있다.
경찰은 이제 선거는 끝났으며 더이상의 혼란은 묵과할 수 없다고 시위대에 경고했다.
즉결재판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다른 동유럽국에 비해 다소 뒤늦게 민주적 변혁을 촉구하고 있는 베오그라드의 대규모 시위는 정치적 타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등 예기치 않은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그러나 베오그라드의 시위사태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된다 해도,그리고 그것이 어떤 변혁을 초래한다 하더라도 이를 지난 89,90년 동유럽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와 비교한다는 것은 온당치않은 일이다.
그것이 체코의 혁명과 유사할 것이라는 야당연합 자예드노(공동)의 주장은 합당치 않다.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그의 연정 파트너이자 부인인 미라 마르코비치가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부부가 당했던 것처럼 유혈적 종말을 맞을 가능성도 없다.
설령 이들이 강제로 물러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지금까지 지연된 제도를 개혁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대(大)세르비아주의의 실패로 유고슬라비아가 갈라진 후 세르비아는 무엇보다 새로운 질서를 필요로 하고 있다.세르비아 야당은변혁을 일으키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아직도 불안한 옛 유고 평화는 밀로셰비치 대통령으로 하여금 일정한 역할을 하도록 해주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많은 야당 지도자들도 밀로셰비치에 뒤지지 않는 민족주의자들이다.그들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를 끝내 퇴진하게 내버려둔 밀로셰비치를 배신자라고낙인찍었다.야당 지도자들은 세르비아계의 점령지였 던 서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의 크라이나에서 세르비아 난민들이 쫓겨나올 때 밀로셰비치를 비난했다.
베오그라드 학생들이 야당과 합작해서가 아니라 별도로 시위를 벌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야당은 지난달 17일의 2차 지방선거에서 예상외로 승리하기는했지만 이보다 2주 앞선 3일의 1차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밀로셰비치가 비록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선거를 무효화시키기는했지만 새로 실시된 3차 선거에서도 야당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밀로셰비치 정권의 선거무효화 조치와 시위사태에 대해 다소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억압에 대해 서방이 적극적 대응을 하지 못하는데는 세르비아의 불안이 전체 보스니아의 평화노력에 타격을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달라진 베오그라드와 세르비아에 대한 경탄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정리=한경환 베를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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