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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화제작기행>"음식의 맛,자유의 맛" 시드니 민츠 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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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애틀랜타올림픽의 주인 노릇을 한 코카콜라사는 1892년 창립이래 그곳에 본부를 두고 있다.1886년 한 개인에 의해 코카콜라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음료는 그동안 성분은 바뀌어도 이름은 바뀌지 않은채 현대인의 입맛을 계속 파고들어 오늘날 가장 세계적 음료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차대전 때까지만 해도 코카콜라는 세계적 음료는커녕 미국적 음료의 자리에조차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판매는 남부지방에 집중돼 있었고 다른 지방에서는 칵테일에나 섞어 먹는 정도가고작이었다.진주만 피습후 미 합참의장 조지 마셜 은 미군이 주둔하는 어느 곳에서도 코카콜라를 사 마실 수 있게 하는 일견 엉뚱한 계획을 추진했다.이에따라 코카콜라사는 전시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설탕등 원료를 넉넉히 공급받았고,군부의 도움을 받아가며세계 각지에 64개소의 병입공장을 세웠다.
마셜의 코카콜라작전은 전선이 확장되는 상황에서 병사들의 사기를 유지하고 나아가 애국심을 구체화하는 일종의 심리전략이었다.
유럽의 참호에서,남태평양의 배 위에서,병사들이 가족에게 쓴 편지에는.코카콜라 마실 권리를 지키기 위해'적군과의 싸움에 임한다는 구절이 수없이 들어 있었다.
역사가 짧고 강력한 상징물이 없던 미국에서 코카콜라 사랑이 나라사랑으로 자리잡은데는 군부의 공로가 컸다.2차대전후 미국이초강대국의 자리를 차지함에 따라 코카콜라는 미국의 음료이자 세계의 음료로 발돋움했다.전세계 수십개소의 병입공 장이 이 발전의 발판이 된 것은 물론이다.
시드니 민츠는.음식의 맛,자유의 맛'(원제:Tasting Food, Tasting Freedom,비컨프레스 刊)에서 코카콜라의 발전을 예로 들어 음식문화의 내적 의미와 외적 의미가 얽히는 것을 보여준다.내적 의미가 개인생활 속의 문화적 함축이라면 외적 의미는 정치사회적 조건이 음식문화의 틀을 결정하는 방향이다.내적 의미와 외적 의미가 끊임없이 맺는 상호관계를 파악함으로써 비로소 음식문화의 총체적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음식문화의 외적 의미란 곧 권력관계로 볼 수 있다.모든 문화분야에 대해 그렇듯 권력은 음식문화를 체제에 길들이려 한다.그러나 먹고 마시는 것은 동물로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행위라는 점에서 권력의 의도에 가장 강인하게 저항하는 영역이다.최악의 억압 속 에서도 인간이 음식을 통해 문화적 개성을 지키고 키워낸 예로 저자는 카리브제도의 노예사회를 든다.
16세기 초부터 아프리카에서 수입돼 플랜테이션에 사역된 흑인노예들은 고향의 문화와 사회에서 격리돼 강요된 노동과 생활의 조건 속에 놓였다.그들에게 익숙한 식품은 없고 낯선 취사방법이강요되는 일이 많았다.이런 역경 속에서도 그들은 나름의 새로운음식문화를 만들어냈고,이 문화는 지배자인 백인사회,그리고 고향인 아프리카에까지 전파됐다.
농장주들은 더러 음식을 집단으로 준비하려 하기도 했다.그러나여기에는 식량작물의 재배와 취사에 노동력이 별도로 필요했기 때문에 비경제적이었다.따라서 대개는 노예들이 가족단위로 알아서 작물을 키우고 음식을 해먹도록 허용했다.어떤 작 물을 재배해 어떤 음식을 어떻게 해먹느냐 하는 것은 대부분의 노예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활동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제한된 음식재료로 여러 출신지역의 취사방법이 뒤섞여 빚어낸 음식문화,이것을 순수성이 결여된 잡탕문화라 폄하하는 관점을 저자는 단호히 배척한다.
문화적 순수성 자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저자는 설탕 이야기로 이어간다.중세 말에야 유럽에 전파된 설탕은 그 깨끗한 색깔과 깨끗한 맛으로 인해 순수성을 상징하는 식품이 됐다.설탕은 고급 음식문화의 필수품이 됐고 그 소비량을 근대화 의 척도로 보는 시각까지 유행했다.그러나 오늘날은 비만증.당뇨병등과 연결돼 천덕꾸러기가 됐다.
.순수성'의 개념에는 자연적 순수성과 화학적 순수성이 혼재해있다.양자는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반대되는 성향까지 가진 것이다.벌꿀이 자연적 순수식품이라면 설탕은 화학적 순수식품인데 순수성에 대한 사회의 시각변화가 설탕에 대한 평가 를 좌우해온셈이다.여기에 화학적 순수성이 더한 합성감미료까지 나와 협공에몰린 것이 지금 설탕의 입장이다.
우리 또래가 어렸을 적 자장면을 좋아했던 반면 요즘 아이들은그만큼 피자를 좋아한다.시대가 바뀌면 입맛이 바뀌는 것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그러나 인간의 근원적 의미는 무엇보다 음식문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구현된다는 민츠교수의 지적 은 세계화의 혼란스러움 속에서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겠다.어찌 보면 문화적 자주성을 지키는데 언어보다 중요한 것이 음식일지도 모를 일이다***저자**시드니 민츠는 존스홉킨스대 인류학 교수..사탕수수노예와 카리브제도의 변화'.단 맛과 권력'등의 저술이 있다.동구 출신이민 요리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식문화의중요성을 예민하게 느꼈다는 민츠교수는 문화인류학에서도 음 식의중요성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음을 비판한다.
김기협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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