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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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15면

지난주는 바빴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하룻밤, 태백 강원랜드에서 하룻밤 묵으며 1박2일 여행을 두 탕 뛰었다. 하회마을의 숙소는 품격 있고 당당한 풍산 류씨 고택이었다. 200년 넘게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옛집을 지키고 있는 주인어른의 품행은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다웠다. 어쩌면 그 고택이 그의 몸가짐, 마음가짐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숭례문 화재 때 유명해진 금강송을 기둥으로 쓰고, 당대의 명필 한석봉이 쓴 현판을 내걸고, 산과 강이 태극 문양으로 어우러진 하회마을의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인 그 당당한 한옥에는 행인도 쓸 수 있게 변소를 밖에 세운 마음씀씀이도 숨어 있다. 만추의 하회마을은 또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쪽빛 가을 하늘과 잘 익은 주황색 감은 가장 한국적인 색감의 선명한 대비였고, 낮게 이어지며 하회마을을 둘러싸는 산과 둥근 초가지붕의 어울림은 한국의 선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같았다.

안동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이번에는 행사에 참석하느라 태백 강원랜드로 떠났다. 포르셰 자동차의 ‘월드 로드쇼’는 태백 레이싱 파크에서 하루 종일 포르셰를 타는, 음, 그야말로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은 눈 튀어나오는 행사다. 원래 자동차를 담당하는 후배 기자가 가야 하는 자리인데 선배랍시고 슬쩍 밀쳐내는 주책을 부렸다. 내 여자친구는 그런다.

“반전의 묘미가 있어.” 얌전하게 보이는데 알고 보면 안 그렇다는 얘기다. 멀쩡하게 밥 잘 먹다가 갑자기 젓가락으로 귀를 파는 엉뚱한 남자라는 거다. 나도 그 얘기를 크게 부정하진 않는다. 기회가 없어서 그랬지 스포츠카도 몰아보면 의외로 꽤 좋아할지 모른다고 짐작은 했더랬다.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고 스티어링 휠을 마구 잡아 돌리면서 나는 흥분했다. 타이어 타는 냄새와 마찰음, 몸을 누르는 중력은 흥분의 촉매였다. 어느 순간,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벌떡 일어나 원래의 나를 밀어내고 스티어링 휠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내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다시 내 안 어디론가 숨었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여행에서 나는 만났다. 나한테나 남들한테 익숙한 나, 그리고 내 안의 또 다른 나. 모험과 여행은 ‘제2의 나’를 발견하게 해준다. TV 앞에서 뒹굴거리기에 주말은 너무 짧고, 찾아야 할 또 다른 나는 너무 많다. 사실은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제3의 나’를 발견하고 싶었지만 도박하던 부인이 화난 남편한테 붙잡혀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탐구욕을 접었다. 이건 잘한 일이겠지?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해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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