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中企人25時>용화산업 최용주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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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경기도고양시덕양구삼송동의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25평짜리 공장.출입구만 있을뿐 창문 하나 없다보니 햇빛도 들지 않는다.
게다가 공장의 절반은 살림집이다.12대의 장갑 편직기 소리가 지하실을 메아리치듯 웅웅거린다.
80년 군 제대 직후부터 지금까지 16년째 목장갑과 인연을 맺어온 용화산업 대표 최용주(崔龍珠.40)씨.해외투자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올해초 갑자기 부도가 나는 바람에 채권자들을 피해 한동안 도피생활을 하다 최근 재기를 위해 새로 마련한 공장이다.그는 부도 이후부터 최근까지 당했던 고통에 대해“다른 부도 기업인들도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생각조차 하기싫은 기억이 많다”고 말한다.
그는 후천성 장애인이다.91년 음주운전차량에 받힌 후유증으로94년 오른쪽 무릎 아래를 절단하고 의족을 달았다.
영등포시장에서부터 시작해 장갑을 팔기만 하다 지난해 9월 장갑 제조업체인 ㈜경일C&C를 차렸다.불편한 몸으로는 장사보다 공장운영이 낫겠다 싶었던 것.월 3억원정도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출발은 좋았다.그러나 장갑의 판매단가가 워낙 낮은 반면 임금.자재값은 비싸 남는게 거의 없었다.
러시아로 눈을 돌려 옴스크에 공장자리도 봐뒀다.그러던중 기계를 반출하기 직전인 1월 중순 운영자금 부족으로 부도가 났다.
당시 부도금액은 3천4백만원.러시아 사업이 너무 장미빛으로 보여 서두른게 화근이었다.
피땀흘려 마련한 공장이 흔적없이 사라졌다.채권자들에게 시간을달라고 사정하고 빌었지만 소용없었다.의정부로 끌려가 이틀간 감금된 가운데 온갖 욕설을 다 듣고 폭행까지 당했다.채권자들의 위협이 계속되자 가족을 데리고 여관을 전전하며 도피생활도 했다.공포의 연속이었다.이들의 고소로 사흘을 경찰서 철창에서 보내기도 했다.참다못해 맞고소로 대응했지만.죄인'이라는 자괴감에서고소를 취하했다.
부도 이후 실의에 차있던 崔씨는 그러나.이대로 물러설수 없다'며 불편한 다리를 끌고 다시 공장터를 찾아 나섰다.남아있는 빚도 해결해야 했고,자신만 바라보고 사는 식구들에게도 떳떳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보증금 4백만원에 월세 40 만원의 삼송리 지하공장을 어렵게 마련했다.
崔씨의 새 공장에는 직원이 한명도 없다.혼자서 다한다.밤낮없이 기계를 돌려봤자 월 매출은 6백만원.공장 월세와 원자재비를제하면 남는게 별로 없다.빚도 5천만원이나 남았다.종업원을 채용할 형편도 못되고,부도 이후 그를 대하는 주변 의 시각도 예전같지 않다.崔씨는 그러나“용기가 있는한 절망은 없다”며 매일매일 불편한 다리를 끌며 장갑을 나르고 있다.
崔씨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무리한 사업확장은 중소기업 부도의 지름길”이라며“부도 이후 어떤 괴로움이 닥치더라도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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