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대기실 인권침해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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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노점상 李모(76.여.서울중랑구면목4동)씨는 최근 연탄 한장을 훔친 혐의로 서울 청량리경찰서 형사계 피의자 대기실에 갇혔다.李씨는 평소 안면이 있는 청량리시장내 연탄가게에서.한장쯤 외상으로 가져가도 되겠지'하는 생각에 무심코 집으 로 들고왔다가 가게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李씨는 4시간동안 .철창'속에서 대기하다 결국 간단한 조사만 받고 불구속으로 풀려났다. 94년.영장없이 피의자를 감금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나오자 경찰은.피의자 대기실의 운영방식및 내부구조를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다.경찰서에선 혐의가 가벼워 영장이 불필요한 기소중지자.불구속 대상 자등의 조사에도 수사 편의를 내세워 대기실을 .감금 장소'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불구속 피의자.현행범 감금 남용=회사원 金모(39.서울성북구안암동)씨는 지난 13일 서울 중랑경찰서 피의자 대기실에 감금됐다.음주운전으로 조사를 받던중.음주측정이 잘못됐다'고 담당형사에게 항의하자.귀찮다'며 대기실에 넣고 문을 잠근 것이다.
金씨의 혈중 알콜농도는 0.108%로 구속기준(단순음주운전 0.35%)에 훨씬 못미치는 상태였다.
무허가로 호프집을 차렸다가 적발된 金모(40.서울동대문구장안동)씨 역시 경찰서에 끌려와 3시간동안 갇혀있어야 했다.金씨의경우 매출액이 적고 추가 혐의도 없어 벌금형이 고작이지만 .현행범'이라는 이유로 체포된 것이다.
◇기소중지자 불법 감금=지난 17일 오전9시쯤 서울 동대문경찰서 형사계 피의자 보호실.임금 3백만원을 체불한 혐의로 서울지방노동청에 의해 수배됐다 경찰에 붙잡힌 朴모(38.사업.서울동대문구용두2동)씨는 노동청으로 넘겨지기 전까지 하룻동안 피의자 보호실에 갇혀있어야 했다.朴씨는“부도가 나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다녔을 뿐인데 철창에 가두는 것은 불법 아니냐”고 항의했으나 허사였다.
94년 검찰은 기소중지자 체포와 감금이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높자.긴급구속 대상등 사안이 중하고 혐의가 확실한 피의자는 사전영장을 발부받고 벌금형등 사안이 가벼운 기소중지자는 소재가 파악되면 해당 경찰서에 통보한다'는 처리기준을 마 련했다.그러나 경찰은 관행적으로 기소중지자를 체포,대기실에 불법 감금하고있다. ◇개선방향=서울대 법대 신동운(申東雲)교수는“구속자를 수용하는 유치장이나 즉심 대상자 보호실과 달리 피의자 대기실의경우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며“유치장.보호실을 잘 운용하면 피의자 대기실은 완전한.휴게실'처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말했다.경찰의 한 수사간부는“인권침해 우려가 있지만 수사 편의상 대기실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춘원 법률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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