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지출 확대보다 감세가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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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부가 너무 오랫동안 펀더멘털(기초체력) 타령만 했다.” 20년간 미국 월가에서 생활해 온 데이비드 전(45·사진) 아틀라스캐피털 대표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29일 새벽 뉴욕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지금은 100년 만에 오는 태풍”이라며 “건강한 사람도 한겨울에 밖에서 자면 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를 발표하는 유력 민간 연구기관인 콘퍼런스보드의 이코노미스트를 거쳐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서 근무했다. 2006년에는 글로벌 헤지펀드인 아틀라스캐피털을 공동 설립했다.

그는 “한국이 외환위기 때보다 펀더멘털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지난 10년간 경제체력이 좋아진 나라는 한국 말고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모든 나라가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어떻게 하면 덜 다치고 빨리 회복할 것인지에 정책의 중점을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환율을 가장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과 같은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일 때와 1500원일 때의 한국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기초체력이 좋아졌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상태를 방치하면 외환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며 “환율이 지나치게 오른다고 말만 할 게 아니라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환보유액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시장에 달러가 돌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얘기다.

특히 그는 “지금과 같은 고환율에서 시간이 더 흐르면 경제 시스템이 여기에 맞춰 바뀌어 버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기적인 수요·공급의 불균형을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해 원화 자산에 투자하면 달러화 자산보다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심어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수 확대 방침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세계 경제가 꺾이는 마당에 한국이 수출로 위기를 돌파하겠다고 하면 이는 난센스”라고 말했다. 다만 내수 부양 방법은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보다 감세나 세금 환급이 나을 거라고 내다봤다. “돈이 생긴 이웃이 소비를 늘려 간접 혜택을 보는 것보다 내 호주머니에 직접 돈을 넣어 주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급하더라도 지금은 원인과 결과를 잘 따져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가가 떨어진다고 증시에 돈을 밀어 넣기보다 소비 진작 등을 통해 투자심리를 되살리는 데 주력하란 얘기다. 그는 “아픈 사람의 열을 내릴 순 있어도 그게 바로 치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며 “원인을 찾아 수술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이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채 25조원 가운데 5조~10조원어치만 사 주겠다고 한 데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시장에 100달러가 필요한데 200달러를 푼다고 하면 50달러로 문제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50달러만 주겠다고 하면 100달러, 아니 150달러가 들어갈 수도 있다.” 한은이 좀 더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마지막으로 “외환위기 때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말했다. “지금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게 쉽진 않겠지만 외환위기 때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큰돈을 벌어 나간 걸 생각하면 수비만 할 때는 아니다”는 것이다.

김선하 기자

■데이비드 전

10세 때인 35년 전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욕의 컬럼비아대와 동 경영대학원(MBA)을 나와 콘퍼런스보드·베어스턴스에서 일했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가 거액을 맡겼던 디스커버리 펀드를 운용한 경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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