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부산 피난 때 일이다.
남편이 야릇한 물건을 가져와 자랑한 적이 있었다.미군 장교가일본서 휴가를 마치며 사온 선물이라 했다.쇠뿔로 정교하게 깎아만든 것인데 크기로 보나 모양으로 보나 흡사 남근이었다.빨간 꽃무늬 비단으로 곱게 바른 상자 안에 꼬마 방 석이 깔려있고 쇠뿔 조각품은 그 방석 위에 소중히 모셔져 있었다.
“웬 조각품이에요?” 우리나라 동해안 일대의 바닷가 사당에도나무로 깎은 양근(陽根)이 수두룩이 헌납되어 있지만 쇠뿔 양근은 처음이다.
“조각은 조각이지만 감상용이 아니라 실용도구야.” 남편은 야한 웃음을 입가에 띠었다.
“왜말로.하리카타(はりかた)'라는 거야.한자로.장형(張形)'이라 쓰지.옛날부터 여자들이 써온 성구(性具)야.” 침모(針母)의 반짇고리에 숨겨져있던 두눈박이 목근을 본 옛일을 기억해냈다. “이걸 더운 물에 잠시 담가뒀다 쓴다는 거야.” 실험이라도 할 기세에 질겁을 했다.
“규슈(九州)에서만 재배된다는.하스이모(はすいも)'라는 흰 토란 줄기 성구도 부탁했는데 시간이 없어 그냥 왔대.배편으로 보내온다니 기다려 봐야지.” “토란 줄기요?” “그 토란 줄기이름이.즈이키(ずいき)'라는데 박고지처럼 길게 깎아 말린 것을더운 물에 약간 불려 물기를 닦은 다음 목근에 둘둘 감아서 쓴다더군.” “그건 또 왜요?” 하고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한없이 천박해지는 대화에 자기혐오를 느꼈기 때문이다.그러나 남편은 자기.지식'에 신명나는 듯했다.
.즈이키'는 음부에 쾌감을 주는 성분을 지니고 있어서 목근이나 우각근(牛角根)만을 쓰는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여러가지로 장점이 많다던가.다만 둘둘 감기를 잘해야 풀려 빠지지 않는다고친절히 덧붙이기까지 했다.또 남자가 직접 감아쓰는 경우도 있다며 일본서 토란 줄기가 우송되어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었던 일이묵은 필름처럼 아슴푸레 스쳐 지나갔다.
구르몽은 이같은 일본 성구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18세기의 일본을 휩쓴 풍속화.우키요에(うきよえ.浮世繪)'는19세기 유럽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서민의 생활상을 두루 그린 이들 민중에 의한 민중의 그림중엔 춘화(春畵)도 많았고 자위행위를 묘사한 것도 있었다.
19세기 후반을 산 레미 드 구르몽도 이런 그림을 보았는지 알 수 없으나 당시의 유럽 여성들이 어떤 방법으로 공방살이의 고통을 달래고 있었는지,그에 대한 기술은 유감스럽게도 없다.
글 이영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