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벼랑끝전술 의연한 대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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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험악한 말로 되풀이 돼오던 북한의 위협이 결국 행동으로 나타났다.잠수함침투에 대해 사과할 때까지 경제협력 등 교류를 중단한다는 정부방침에 대해 갖가지 엄포끝에 19일 판문점의 연락사무소폐쇄에 나선 것이다.천배 백배 보복하겠다,미국 과의 핵합의를 지킬 의미가 없다는 등 위협할 때 예견됐던 벼랑끝 수법의 시작이다.
북한이 이러한 수법을 사용하는 배경은 뻔하다.문제를 순리로 풀 수 없거나 궁지에 몰리면 억지로 긴장을 고조시켜 자기네에게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다.북한의 그러한 전략이 효과를 본 것이 미국과의 핵동결 협상이었다.그러나 이제 그런 수법이 통하던 시기는 지나갔다.지금까지 경험에서 터득한 것은 북한이 아무리 협박하더라도 일관성을 유지하며 단호하게 대처하면 종전의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지난 4월 미국이 북한과 군사대화 통로를 열지 않으면 휴전선에 서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무력시위를 벌이다가 그만둔 것이 그러한 예다.
연락사무소폐쇄는 물론 여러가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잠수함침투 처리방안을 두고 한.미(韓.美)간에 이견이 있는듯 알려지고 있는 터에 위기감을 높여 양국의 대북(對北)공조체제에 틈새를 넓히자는 속셈도 있을 것이다.더욱이 아시아.태 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를 계기로 예정돼 있는 한.미 정상간의 정책조율을 압박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협박이 빈말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다음 벼랑끝전술은 핵동결까지 갈 수 있다는 위협이라고 볼 수도있다.북한이 현재 진행중인 폐연료봉의 봉인작업을 지연시키거나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방해할 가능성 등이 그러한 위협이다.그럴 경우 미국정부가 북한의 핵동결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정부를 설득하리라는 것이 북한의 노림수다. 작은 틈새라도 있으면 북한의 벼랑끝전술에 대한 유혹은 더욱 커질 것이다.협박이 소용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과 태도의 유연성을 지니고 미정부와 긴밀히 논의하며공조체제를 굳건히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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