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 경제학] 당첨이 안 반가운 ‘로또식’ 세무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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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3·5·4·6. 국세청이 올해 정기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 로또 추첨을 연상케 하는 방식이 동원됐다. 28일 서울 수송동 국세청 청사에선 세무조사 대상 중소법인 200곳을 선정하기 위한 번호 추첨이 있었다. 1~9가 표시된 공 9개를 함에 넣고, ‘조사 대상 선정심의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교수와 변호사 등 6명이 하나씩 공을 뽑았다. 이들이 고른 번호를 순서대로 조합한 것이 973546. 여기에 후보 기업들에 미리 부여한 숫자(난수)를 곱해 새 숫자를 만들고, 미리 정한 기준(소수점 이하 값이 큰 곳)에 따라 대상 기업을 선정한다.

공을 뽑는 것은 로또와 비슷하지만 당첨자에겐 상금 대신 달갑지 않은 세무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국세청이 전례 없는 방법을 쓴 것은 조사 대상 선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국세청 관계자는 “모든 기업을 다 조사할 수 없는 만큼 무작위 추출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을 검증받기 위해 민간위원을 참여시키고 언론에도 공개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모든 세무조사 대상을 로또식으로 뽑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게 신고한 기업은 아예 후보군에서 제외됐다. 대신 불성실 신고 혐의가 뚜렷하고 장기간 조사를 받지 않은 2500곳은 별도 과정을 통해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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