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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tyle] 올가을 패션 빈티지에 물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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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왜 요즘 노래는 들을 만한 게 별로 없을까. 예전 명화들을 보면 가슴 찡한 명장면으로 가득한데 왜 요새 영화는 볼만한 게 없을까.

답은 쉽다.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각광받는 명작·명곡은 관객과 청중의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 살아남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요즘 빈티지(vintage) 유행은 이런 명작·명곡에 대한 향수와 닮았다. 명멸해 간 패션 아이템 중에서도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것들이 복원되거나 거기에 새로운 감각을 덧붙여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것이다.

빈티지 코드 하나만 제대로 알아도 당신은 올해의 스타일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 대체 빈티지가 무엇이기에.

#패션, 역사가 되다


2003년 국립국어원이 펴낸 『신어 자료집』에 따르면 빈티지는 ‘옛것으로 품위를 살린 데가 있다’는 뜻의 형용사다. 본래 영어로는 ‘특정 연도의 품질 좋은 와인’을 뜻한다. 그러나 요즘 패션계에선 가장 흔하게 쓰이고 있고 우리말의 새 용어집에 등장할 만큼 친숙해졌다. 미국의 대표적인 명품 업체인 코치의 리드 크라코프(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빈티지 열풍의 이유가 “편안하지만 새로운 것을 찾는 심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명작 영화처럼 이미 한번 인기를 끌어 소비자에게 익숙한 것을 복원하거나 인기작을 원형 삼아 특별한 재미를 주는 것이 요즘 빈티지 아이템이란 얘기다. 코치는 뉴욕 맨해튼의 블리커가(街)에 ‘레거시 부티크’라는 빈티지풍 매장을 따로 운영 중이다. 여기선 일반 코치 매장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특별한 빈티지 아이템을 판다. 수십 년 전 처음 나왔던 핸드백의 고리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덧대어 꿰맨 느낌을 살린 ‘패치 워크’ 핸드백이 그 예다.

빈티지의 인기는 다방면에 걸쳐 있다. 경매회사인 크리스티는 최근 ‘빈티지 주얼리’를 주제로 한 특별 기획전을 열기도 했다. 프랑스의 명품 보석 업체인 반 클리프 & 아펠(이하 반 클리프)의 박물관장인 캐서린 캐리우는 세계 곳곳을 돌며 빈티지 주얼리를 수집한다. 캐리우가 수집한 보석은 판매용이 아니라 반 클리프의 전시용이다. 그는 “왕족 또는 귀족의 주문 제작품, 역사 속 연애사에 관련된 보석 등 이야기가 풍부하고 역사적 상징성이 있는 작품이 수집 대상”이라고 밝혔다. 캐리우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보석으로 만든 현대적인 작품들을 시대의 아름다운 유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며 “최근 최고급 주얼리 시장에서 빈티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반 클리프는 전시용인 ‘프라이빗 컬렉션’을 기반으로 디자인한 빈티지풍의 ‘헤리티지 컬렉션’을 출시하고 있다.

#빈티지는 미래를 보는 눈

빈티지 상품은 반 클리프처럼 역사성을 앞세운 상품이 대부분이다 보니 한정판으로 출시되는 경우가 많다. 운동화 브랜드인 컨버스는 올초 출시 100주년을 기념한 운동화를 한정판으로 내놨다. 20세기 초 제작됐던 모델을 기본 디자인으로 한 ‘센추리 팩’은 운동화 포장 용기를 나무로 만들어 한껏 빈티지의 예스러움을 살렸다. ‘100년 전 디자인’이란 특별함에다 ‘한정판’의 희소성까지 갖춘 셈이다. 이렇다 보니 빈티지 스타일은 역사성이 풍부한 브랜드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청바지의 대명사 리바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청바지로 기네스북에 기록된 것을 기념해 ‘네바다 1880’이라는 한정판 모델을 출시하기도 했다. 500장 한정 판매된 ‘네바다 1880’은 98년 미국 네바다주의 광산타운에서 발견된 유물을 복원한 것인데 원작은 1880년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장품 브랜드 아베다는 올해 브랜드 창립 30년을 맞아 창립연도인 78년에 내놨던 용기 디자인을 차용한 샴푸를 내놨다. 2000개 한정 생산인 ‘빈티지 클로브 샴푸’는 11월 한 달간만 판매된다. 패션 브랜드 라코스테는 창립 75주년을 맞아 창업자인 르네 라코스테가 1933년 처음 사용했던 로고를 그대로 재현한 피케 티셔츠도 내놨다.

진짜 빈티지가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한다면 최근의 빈티지 스타일은 말 그대로 스타일만 살린 경우도 많다. 돌체&가바나, 드리스 반 노튼, 잔 프랑코 페레 같은 브랜드들이다. 이런 브랜드의 의상은 최근 패션의 복고 흐름과도 맞아떨어진다. 70년대 혹은 80년대의 의상을 주제로 삼은 것들이다. 허리 선이 위로 쑥 올라간 ‘하이 웨이스트’ 스타일의 치마나 바지, 어깨가 넉넉하고 품이 넓은 재킷 등이다.

빈티지 패션의 유행은 스타일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뉴욕타임스의 쇼핑 평론가인 자라 크로퍼드는 이런 해석을 내놓는다. “빈티지 의상은 ‘미래에 대한 안목’이다. 어렸을 적 보았던 멋진 옷을 동경하던 소녀가 이제는 성장해 돈을 벌게 됐다. 소녀가 그것을 살 수 있게 됐을 때, 예전의 것, 지금은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빈티지 의상을 골라 산다. 소녀가 이전에 보았던 그 옷은 오늘의 것, 당시로 봤을 땐 미래의 스타일이었다.”

글=강승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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