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코노믹스>규제와 뇌물의 逆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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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렌트(rent)하면 흔히 지대(地代)부터 떠올린다.농업경제시절 땅 임자에게 바치는 사용료를 주로 의미했다.오늘날 렌트의 의미는 다양해졌다.
렌터카는 물론이고 시설과 장비.공장까지도 돈을 주고 빌려 쓴다.아이디어를 빌려 쓰는 대가,즉 로열티도 일종의 렌트다.
.경제적 렌트'라는 말도 등장했다.이권확보나 정책적 보호 또는 독점적 지위의 .울타리'안에 앉아 덤으로 챙기는 독점적 이윤을 의미한다.이를 얻기 위한 로비활동을 .렌트추구'(rent-seeking)라고 부른다.개발경제학자 앤 크루 거(듀크대)가 74년 만들어 낸 말이다.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많고 그에 따른 뇌물과 부패가 득실대는 사회를 .렌트추구사회'로 부른다.
정치적 영향력을 동원해 경쟁을 제한하고 독점적 이익을 적당히 나눠 먹는다.사회전체의 이익에 보탬을 주지 못하는 비생산적 이윤추구 행위다.70년대말 터키와 인도는 렌트추구에 따른 국가적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했다는 연구도 있다.브라질은 7%,파키스탄은 6%로 추정되기도 했다.각종 인.허가,그리고 시가보다 싼값에 따내는 각종 사업권은 그 자체가 엄청난이권이다.사회전체에 돌아가야 할 혜택이 특정업체나 정치인.관료들에게 잠식당한다.개발도상국 비효율의 가장 큰 원인중 하나로 이 .렌트추구'가 갈수록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규제가 많은 나라에 속한다.경제에 대한국가간섭,기업에 대한 컨트롤,기업투자 결정과정에서의 정부간섭,가격통제,번거롭고 복잡한 행정절차,정부계약과정의 불투명성,독과점적 시장지배구조등 규제관련 8개 조사항목에서 골고루 선두그룹을 달린다..지구상에서 가장 비즈니스 하기 힘든 나라'로 외국인들이 첫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국제부패방지기구인 .투명인터내셔널'의 .부패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42개국 가운데15번째로 부패가 많은 나라다.규 제는 곧 부패로 이어진다.부패가 많은 나라가 어떻게 높은 성장을 거듭하며 .경제적 기적'을 이룩할 수 있느냐를 놓고 부패와 경제성장간의 인과관계 연구도 고개를 든다.열심히 일하는 관료들에게 뇌물이 큰 인센티브가되고 있다는 모욕적인 분석도 곁들인다.부패에 관한 경제학적 연구들은 아직은 선언적이다.최선의 방법은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것이다.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려우면 몇몇에 과점시키는 것이 차선이다.최악은 독점이라고 한다.
.뇌물은 규제보다 싸다'는 역설도 제기된다.경쟁자들이 골고루로비를 펼쳐 어느 일방의 독점을 막을 수 있다면,또 규제를 폐지하거나 새로운 규제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면 사회전체로는 훨씬 이익이라는 논거다.로비의 양성화.법제화가 최 선일 수는 없지만 상호작용 및 감시로 사회적 낭비와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차선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규제는 조건 없이 그냥 철폐돼야지 그 중간단계인 .완화'는 뭐냐는 물음이 최근 일본에서 제기되고있다.우리의 고비용.저효율은 규제와 부패의 다른 이름이다.그럴수록 규제는 정치논리나 사정(司正)차원이 아닌 경제논리에 따라풀어야 한다.최근 정부 고위관계자가 “경제정책은 책상을 떠나면바로 정치”라고 말했다고 한다.우리 정부의 수준을 다시 한번 절감케 한다.

<경 제담당국장> 변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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