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기적 담배수출 自省論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최근 워싱턴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담배청문회」가 시작됐다.
일요일자 워싱턴포스트지는 1면 톱기사로 시작,안쪽 2페이지 전면을 할애해 총4회로 예정된 대형 기획기사의 1회분을 내보냈다. 마치 의회의 청문회를 연상케 하는 이 기획기사는 미 담배회사들이 금연운동 때문에 본국에서 줄어드는 수익을 벌충하기 위해 아시아 각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을 어떻게 공략했으며,미국 정부는 담배회사들을 위해 어떻게 각국을 상대로 「무역전 쟁」을 치렀는가를 다루고 있다.워싱턴포스트는 이 기획을 위해 현지취재는 물론 미국 정부와 담배회사들의 수많은 기록을 뒤졌으며 많은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담배를 「마약류」로까지 규정한 미국의 일반독자들은 이 기사를읽고 과거의 사실에 적잖은 놀라움이나 충격을 받았을 법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정작 한국이나 일본등 미국의 압력속에 담배시장을 열 수밖에 없었던 나라의 독자들에겐 새삼스러운 일이아니다.한국의 사례도 미국의 301조를 통한 무역보복 위협 아래 담배시장 개방협상을 벌이던 85~87년의 국 내 신문기록을찾아보면 모두 나오는 일이다.
예컨대 댄 퀘일 당시 부통령이 담배농가들을 상대로 『미국내 담배 소비가 줄고 있느니 만큼 우리는 수출을 모색해야만 한다』고 연설한 것이나 클레이턴 야이터 당시 미 통상대표부(USTR) 대표가 『공정무역과 건강은 별개의 문제』라며 아시아 각국과무역전쟁을 펼친 것,86년 당시 주한 미대사관의 상무관이 필립모리스의 홍보책임자에게 『협상이 아무리 오래 가더라도 주한 미대사관과 워싱턴의 각 정부부처는 필립 모리스등 미국 담배회사들의 이익을 모든 일에 우선해 고려 할 것』이란 편지를 보낸 것등이 그런 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획기사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미국이 담배회사들의 이익만 생각,상대국 청소년이나 여성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담배를 팔았다는 「부도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워싱턴포스트의 여론 환기를 계기로 미국의 담 배규제가 과연 외국으로의 수출에까지 적용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하기야 환경이나 노동조건등을 거는 그린라운드.블루라운드등 새로운 무역규범을 필요에 따라 만들어내는 미국이니 만큼 마음만 내키면 언제「보건라운드」식의 새로운 무역규제를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워싱턴=김수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