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방송 '임꺽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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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임꺽정이 다시 살아났다.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듣던 옛날 이야기 속의 임꺽정,상상 속에서나 그려볼 수 있던 임꺽정이우람한 몸매에 텁수룩한 수염을 달고 TV화면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SBS가 6주년 창사특집극으로 『임꺽정』을 소생시킨 것이다.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인물이 아니라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다시 태어나 우리 앞에 우뚝 선다.
그런데 우리는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임꺽정과의 첫 대면에서 그의 장렬한 죽음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했다.일부러 소생시킨임꺽정인데 그에 대한 수많은 무용담을 뒤로 한채 하필이면 죽는모습부터 보여주는 저의가 무엇일까.
임꺽정을 모르는 한국사람은 없다.우리의 전통 설화보다 먼저 서양 동화에 물든 요즈음 아이들도 임꺽정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이렇게 다 아는 이야기를 처음하는 것처럼 시침떼고 진지하게 재미있고 신나게 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 이다.
뻔한 이야기라고 외면해 버릴지 모르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SBS는 허를 찌르고 나왔다.그의 용맹무쌍한 무술,장대한 모습을 기대하던 시청자들에게 그의 최후의 모습을 보여줬다.처음부터 맞닥뜨리는 임꺽정의 죽음이 시청자의 가 슴에 일으킬파문을 제작진은 냉철하게 계산했으리라.
이 드라마는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것을 역사 속의 걸출한 인물로 재창조한 벽초 홍명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임꺽정 뿐만 아니라 독특한 개성으로 살아 숨쉬던 청석골패들이 드라마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도 궁금해진다.
아직 주인공들이 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무명의 연기자들을 캐스팅한 것도 그들이 바로 이야기 속의 그 인물로 다가올 것같아 더욱 기다려진다.
임꺽정의 죽음과 출생 배경을 한데 묶어 1부와 2부를 연속해방영한 것도 이야기의 맥을 놓치지 않고 끌어갈 수 있는 효과적인 편성이었다.
『임꺽정』은 여러모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임에 틀림없다.『임꺽정』은 단순히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닐것이다.그를 부활시킨데는 나름대로 그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임꺽정,그가 다시 태어나야 했던 타당성에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시청자들은 열린 의식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것같다.
(女協 매스컴모니터회 회장) 전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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