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對北정책과 韓.美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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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워싱턴 포스트지 기자회견을 둘러싸고 워싱턴의 관심있는 인사들이 한마디씩이다.이들은 북한잠수함 침투사건이후 한국내 분위기를 대변한 金대통령의 발언에 담긴 뜻을 이해한다.미국을 직접 겨냥한 발언은 없지만 워싱턴 의 알만한 사람들은 金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읽고 있다.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이 미국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때 별도의 한.미 정상간 회동을 앞두고 빌 클린턴대통령을 겨냥한 계산된 메시지였을 것으로 짐작한다.이번 기회에 향후 한.미 관계에서 우리의 선택을 짚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우선 대통령의 단호한 입장을 남은 임기 내내 고집하는 방안이있다.지난날 우리의 대북(對北)정책을 두고 일관성 결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이번에는 한번 다부지게 버텨봄으로써한국의 정책에 대한 신뢰회복의 전기(轉機)로 삼는 것도 한 방법이다.그러나 단호한 입장을 싱겁게 거둬들일때 정책의 신뢰성에미칠 엄청난 부담을 예상해야 한다.
이번 회견을 통해 미국이 한국을 만만히 보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를 기대했다면 이 또한 부분적으로 의미가 있다.미 행정부가한국에 대한 둔감증에서 깨어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그러나 이 경우 남한의 단선적 강경자세가 충돌을 향해 달려온 북한의 행태와 다를 것 없다는 지적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 서울과 워싱턴간의 석연찮은 분위기는 북한이 미국의 외교지평에 등장한뒤 삐끗하기 시작한 한.미 관계를 정상궤도로 되돌리는데 요구되는 진통인지 모른다.양국 외교의 수장(首長)이 바뀌고 한국정부가 대미(對美)관계,대북정책을 새롭게 점검하는 모양이니 현재의 진통이 건강한 한.미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 한두가지만 주문하고 싶다.
첫째,한.미 정상의 여섯번째 만남이 한반도의 장래를 염두에 둔 정책공조의 「큰 틀」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됐으면한다.정상간의 대면은 지난날의 서운함을 단번에 불식할 수 있는소중한 기회다.
둘째,양국 관리와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상설대책위원회를 운영하는 방안을 제의하고 싶다.북한의 장래,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및 한.미 동맹관계 조정등과 관련,구체적 전략을 논의하고 양국 정부에 내실있는 정책을 건의하는 일이 대책위의 주된 기능이 될 수 있다.국내정치에 얽매일수록 대북정책이 합리성을 잃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배웠다.국내정치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대북정책을 수행키 위해서라도 대책위원회 운영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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