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작전타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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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01면

축구경기에 빗대 그려본 2008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팀’과 맞붙은 한국 팀은 자신만만하게 경기를 시작했다. 강하기로 소문난 미국과 유럽이 줄줄이 나가떨어져도 우리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선수를 많이 확보했고, 훈련도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다. 10년 전 ‘외환위기 팀’과의 경기 경험도 자신감의 요소였다. 객관적 전력이 좋다는 외부 평가도 받았다.

속절없이 무너진 시장, 그러나 역전의 기회는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 팀은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나라 경제 실력의 총점에 해당하는 원-달러 환율은 연초 938원에서 24일 1440원으로 54%나 급등(통화가치 급락)했다. 지난해 2만 달러를 넘었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중반으로 뒷걸음치게 생겼다. 한국 국채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도 6%를 넘어섰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 훨씬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을 목전에 둔 터키와 비슷한 수준이다. 주가는 1년 만에 2000에서 938로 반 토막 났다. 달러는 물론 원화까지 마르면서 중소기업과 가계의 돈줄이 타고 있다.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이다.

팀워크는 완전히 무너졌다. 주장 겸 골키퍼인 정부가 잇따라 실책을 저지르면서 동료들의 신뢰를 상실했다. 외국 자본의 이탈에 따른 환율 급등에 대비해야 할 4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은 거꾸로 환율 상승을 부추겼다. 달러가 세계적으로 약세를 보이는데도 “지금 환율은 너무 낮다” “환율이 어디로 가야 할지 자명하다”며 작전을 노출했다. 고삐가 풀린 환율은 달러가 강세로 돌변한 9월 이후 재앙으로 다가왔다. 위기론을 먼저 꺼내 불안감을 부추기더니 갑자기 말을 바꿔 위기가 아니라고 우긴 것도 정부다.

상대방의 기를 꺾고 우리 선수들의 자신감을 높여야 하는 리더십은 거꾸로 갔다. 외국계 은행의 한 임원은 “‘장롱 속 달러를 꺼내고 외화 자산을 팔라’는 말은 외국에 ‘얼마나 어렵기에 그러느냐’로 받아들여지고 ‘한ㆍ중ㆍ일 공동기금’은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돈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로 해석됐다”고 말했다. 그는 “제 앞가림에 지친 기업과 가계에 ‘선진국이 될 호기를 맞았다’는 대통령의 말은 딴 세상 얘기로 들린다”고 덧붙였다.

팀의 고참 선수인 한국은행의 모습은 더욱 딱하다. 이성태 총재는 팀워크를 외면한 채 단독 플레이만 펼친다. 은행에 대한 외환 직접 지원과 은행채 매입 등에 실기(失期)를 거듭해 결국 쓸 돈은 다 쓰고도 효과를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

공격수인 기업과 수비수인 가계를 이어줘야 할 은행들은 미드필더 역할을 내팽개쳤다. 외국인 에이전트(주주)에게 잘 보이려고 자기 몸값 올리기에 급급했다. 코치가 건네준 물(자금 지원)을 혼자 마시고도 모자라 공격수와 수비수가 가진 것마저 빼앗고 있다. 은행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발행한 CD 금리가 뛰면서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이자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 후반전에는 완전히 다른 작전으로 임해야 한다. 김석동 농협경제연구소 대표는 “앞으로 남은 실물위기와의 싸움에서 역전승하려면 팀 분위기부터 일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낡은 전술을 과감히 버리고, 경제 주체들의 새로운 역할을 분명히 하는 전술로 결연히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전술의 핵심은 한국팀 특유의 응집력을 되살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자기 몫을 다하며 지친 동료를 다독여 주는 ‘팀워크와 신뢰 회복 작전’이다.

①주장인 경제팀 교체해야=골키퍼 겸 주장인 경제팀 교체가 분위기 전환의 첫 단추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선두로 하는 현 경제팀으론 더 이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게 시장의 냉엄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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