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치 개입 의혹 부른 국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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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정보원의 국내정치 관여 여부가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감이 파행으로 치닫고, 야당 당직자 등이 국정원을 항의 방문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여당은 “국정원이 정치에 관여한 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드러난 사실과 정황만으로도 정부·여당의 설명은 설득력을 갖기에 부족하다. 정부·여당은 사실관계를 철저히 조사해 국민에게 설명하고, 문제가 있다면 제도 개선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정원의 위상 확립을 위해서도 그렇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이 해임된 날인 8월 11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나경원 한나라당 6정조위원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김회선 국가정보원2차장이 아침식사를 함께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여야는 한국방송 사장 경질 여부를 놓고 민감하게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정부·여당 측은 나 의원의 정조위원장 취임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로 언론정책 등의 논의는 없었고, 김 차장은 우연히 동석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상황과 참석자 면면을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지난주 국회 환노위에서 불거진 국정감사 결과에 대한 노동부의 국정원 통보 문제도 양상은 비슷하다. 노동부는 “기관별 협조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해온 일”이라고 해명한다.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 정보의 수집·작성·배포로 직무 범위를 한정하고, 정치 활동을 금지한 개정 국정원법이 시행된 것이 언제인데 ‘관행’을 내세우며 이같이 설명한단 말인가.

우리는 이 같은 논쟁거리를 만든 정부·여당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 협의할 일이 있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국가 안보와 무관한 일에 정보기관을 활용해선 안 된다. 국정원도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가를 위한다는 ‘충정’을 앞세워 추진한 일들이 위법·탈법·편법으로 드러나 조직의 위상까지 흔들린 적이 한두 번인가. 업무 효율을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려는 노력은 별개의 문제다. 정치권이나 국정원 모두 현행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겠다는 다짐과 자세 변화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