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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의 물방울, 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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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홍시를 얼려서 샤베트처럼 먹는 것을 좋아했다. 사각사각 시원하고 달콤해서 아이스크림보다 더 맛있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손님이 올 때 이걸 디저트로 내놓는다. 얼려둔 것을 손님이 도착하기 30분 전에 내 놓아야 숟가락으로 떠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십자로 칼집을 내서 껍질을 벗기면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벗겨진다. 그 위에 레몬즙을 뿌리고 허브잎 하나만 올려 내는 참 간단한 것인데도 손님들이 늘 기뻐하는 것을 보면 이것만한 디저트가 없는 것 같다.

설탕이 없던 시절에는 감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 중에서도 곶감 위에 눈꽃처럼 앉은 하얀 가루는 특히 귀했다. 곶감을 만들 때 생기는 이 흰색 분은 과육 표면 근처에 있는 과당과 포도당이 건조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것으로 예전에는 궁궐에서 감미료로 썼다는 기록이 있다. 감을 말리고 가루 낸 것 역시 귀하고 맛이 좋아서 대추, 밤, 꿀에 조린 귤, 계피가루, 잣, 꿀을 넣어 찐 감설기떡은 차마 삼키기 아깝다 하여 석탄병(惜呑餠)이라 불렀다. 얼마 전엔 감가루로 만든 냉면과 국수도 나왔다. 먹어 본 사람들은 연노란 빛깔이 보기에 예쁘고 천연단맛 때문에 맛도 좋다는 반응이다.

경상북도 청도군에 가면 감으로 만든 와인이 있다. 소반처럼 둥글납작한 모양의 청도반시로 빚은최초의 와인이다. 그 빛깔로만 봐선 화이트와인과 닮았지만 일반 화이트와인보다 약간 더 떫은 맛이 있고 상큼하다. 은은한 감의 향이 한식과도 잘 어울린다. 얼린 홍시로 만든 아이스 감와인도 있는데 포도가 얼어서 단맛이 응축됐을 때 만드는 아이스와인과 비슷한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 (http://www.gamwine.com)

감의 주성분은 당질이고 그밖에 카로틴, 비타민C, K등도 함유되어 있다. 특히 비타민C는 딸기나 귤보다 많아 100g중에 30~50mg이나 된다. 과육보다 감 잎에 많아서 잎을 말려 차로 애용되고 있다. 알코올의 산화분해를 도와주는 과당과 비타민C, 콜린성분이 풍부하기 때문에 술 마신 다음 날 위장에 탈이 생겨 토하거나 설사를 하는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

감의 떫은 맛은 타닌의 일종인 쉬부올(shibuol) 때문이다. 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에 걸린다고 하는 것은 쉬부올이 지방질과 작용하여 변을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인데 철분의 흡수 또한 방해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철분부족으로 빈혈이 생길 수 있다.

옛날에는 감을 보고 황금 겉옷 속에 신선이 마시는 달콤한 액체가 들어 있다 하여 ‘금의옥액(金衣玉液)’이라 불렀다. 신선이 마시는 달콤한 액체라니,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는 비유를 달았을까? 와인을 신의 물방울이라 한다면 감은 ‘신선의 물방울’이라 불러야겠다.

김은아 칼럼니스트 eunahstyl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