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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8월의 대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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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통령직은 매일 매일이 결단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결단은 비록 조율하는 형식을 띤다 해도 항상 대립하는 양자의 의견 중 한쪽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이슈건 강경파가 있고 온건파가 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엄청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강경파들은 미사일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 등을 포함해 소련을 더 밀어붙이라고 했고 온건파들은 잘못될 경우엔 핵전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타협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강경론자들은 소련이 핵전쟁의 위험을 감수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그런데 당시 국가안보위원회 멤버 중 온건파의 핵심은 의외로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이었다. 그는 "당시 핵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50대 1 정도 보았기 때문"에 재앙을 피하기 위해 온건론의 입장을 견지했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더글러스 딜론은 핵전쟁 가능성을 거의 0%로 봤다.

참모들의 이런 가정과 판단 속에서 케네디는 자신의 참모들에게 바버라 터크맨이 쓴 '8월의 대포'(The Gun's of August)를 읽도록 했다. 이 책은 유럽국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에 빠져드는 실수를 저질렀는지 기술한 책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일부 참모들의 요구보다 훨씬 신중한 조치를 취했고 소련의 흐루시초프도 적절한 타협으로 화답했다.

당시 케네디와 흐루시초프가 타협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한쪽이 겁쟁이여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우연한 사건과 실수의 연속선상에서, 이를 되돌릴 수도 있는 정책의 타이밍을 놓쳐 발생한 것처럼, 상황이 그들의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일 패권국 미국이 현재 이라크에서 계속해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대량살상무기의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포로 학대 사건처럼 통제되지 못한 사건들이 연속 발생하고 있다. 실수가 연속돼 더 큰 비극이 초래되면 미국은 '정의의 전쟁'이라는 전쟁의 명분뿐 아니라 역사의 패자가 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미국 지도부는 '8월의 대포' 속의 교훈을 얻어 세계에 용서를 빌고 유엔과 화해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