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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大겸재전'…100여 점 1, 2층 가득 채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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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러운 선묘에 화사한 청록색으로 어루만진 산천과 솟구친 돌무더기의 대비가 아름다운 ‘독백탄’. 남북한강이 어우러지는 양수리 강촌의 풍광이다.

▶ 겸재가 바깥 사랑채에서 글을 읽다 남은 겨를에 더위를 식히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그린 자화상. 겸재는 인물 묘사도 뛰어났다.

우리 옛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5월과 10월 둘째 주말은 손꼽아 기다려지는 때다. 우리 미술의 보물창고인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관장 전영우)이 봄.가을 정기전을 마련해 누구에게나 공짜로 문을 열기 때문이다. 푸른 숲이 마음을 씻어주고 옛 그림이 눈을 씻어주는 올 봄 정기전 제목은 '대겸재전(大謙齋展)'. 18세기 조선 영조대에 그림으로 진경시대를 연 겸재 정선의 그림 100여점이 전시장 1, 2층을 그들먹하게 채운다. 그냥 '겸재전'이 아니고 '큰 대(大)'자까지 붙었으니 겸재전으로는 근간에 보기 드문 큼직한 전시다.

16일 개막해 30일까지 이어지는 '대겸재전'은 이래저래 뜻이 깊다. 1971년 간송미술관이 마련한 첫 전시회가 바로 '겸재전'이었고, 겸재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와 평가를 이끈 곳도 간송미술관이었다. 33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겸재는 그의 그림처럼 한국 회화사에서 가장 단단하고 웅장하며 막힘이 없는 위치에 자리매김됐다. 진경산수화 중심으로 선보였던 겸재 그림이 이제 한자리에 모여 전체 구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30대에 진경산수의 기본틀을 완성한 겸재가 완숙기에 접어든 60대 이후 작품이 많이 나와 안복(眼福)이 터지게 생겼다.

솔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 귀가 푸르다. 선명한 남빛으로 빛나는 산봉우리가 눈을 거쳐 귀로 전해진다. '독백탄(獨栢灘)'은 남.북한강이 물머리를 맞대는 양수리의 전경을 담고 있다. 겸재는 "바람기가 서서히 흩어지며 저녁 볕이 맑게 드리워지자 마음이 깨끗해진다" 고 썼다. 겸재가 남긴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가운데 한 폭이다. 강건한 뼈대를 드러낸 바위 봉우리에 검푸른 군청 색조가 어우러진 산천은 화면 앞에 뜬 배 한 척에 이르러 허주(虛舟)의 경지를 완성한다. 진하고 여린 색조의 셈여림이 그림 전체를 화통하게 이끄니 답답하면 겸재의 그림이 아니다.

기왕에 눈에 익은 진경산수도 좋지만 곰살궂은 화훼나 동물그림도 겸재 손에서는 가장 조선 것답게 변신한다. '소나무 밑 바위에서 호랑이를 엎드리게 하다'는 중국 종교화를 우리 정취로 녹여내는 겸재의 기량이 흐드러졌다. '가을날 한가로운 고양이'는 방아깨비를 노려보는 검정 고양이의 잔터럭까지 세밀하게 그린 겸재의 능력으로 흥미로운 그림이다. 호방하고 장쾌한 필치에서부터 섬세하고 미묘한 떨림까지 겸재의 그림 솜씨를 엿볼 수 있다.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은 "겸재의 말년 그림은 음양(陰陽) 조화와 대비의 원리가 뚜렷하고 우리 산천에 대한 표현 기법이 농익어 그림으로 완성한 조선성리학이라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02-762-0442.

정재숙 기자

*** "우리 산천 우리 식으로" 진경 산수화 열어

겸재(謙齋) 정선(鄭.1676~1759)은 우리나라 회화사가 으뜸으로 꼽는 큰 화가다. 화가로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 하여 화성(畵聖)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 화풍을 좇던 조선조의 흐름을 뛰어넘어 우리 산천을 우리 식으로 표현한 고유 화법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만들어냈다. 화가이기에 앞서 학자이기도 했던 겸재는 조선 성리학을 완성한 율곡 이이(1536~84)의 학맥을 이었고, 그 바탕에서 독자적인 그림 세계를 일궜다. 겸재라는 호는 그가 즐겨 공부하던 '주역(周易)'에 나오는 한 대목, "겸손은 형통하니 군자가 끝이 있으리라"에서 취한 것으로 스스로 겸손하기를 다짐한 뜻이 담겨 있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1745~1806년경)가 더 평가받았으나 남들이 돌아보지 않을 때 겸재의 그림을 알뜰히 모은 간송 전형필(1906~62)의 안목 덕에 그의 화첩 대부분이 간송미술관에 모였고, 진경산수화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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