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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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경주 반월성 터엔 신라때 얼음창고였던 석빙고(石氷庫)가 남아있습니다만 한겨울에 얼음을 챙겨 뒀다 여름철에 꺼내 쓰곤 했습니다. 1988년 9월 일본의 중부도시 나라(奈良.なら)시의한 공사장에서 7세기 후반의 목간(木簡)이 3만장이나 출토됐습니다.목간이란 나무조각에 붓글씨로 적은 옛날 문서입니다.일본 각지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 이름과 1백가지 요리의 내용 을 기록해 놓은 목간이었습니다.
그 공사장은 7세기 후반에서 8세기초에 걸쳐 장옥왕(長屋王)이라는 고관이 살았던 저택 자리인데 목간은 그 저택에 납품된 찬거리와 그것으로 만든 요리를 적어놓은 것이었지요.
그중에 「와인 온 더 록」도 있었습니다.와인에 얼음을 띄워 마시는 칵테일입니다.고대 희랍의 향연서도 와인에 찬물을 타거나해서 마셨다니까 「와인 온 더 록」에 놀랄 건 없겠지만 고대의귀족들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호 사스럽고 우아하게 살았던 것같습니다.
장옥왕이라는 인물은 일본 역사책에 의하면 천무(天武)천황 아들인 고시(高市)왕자의 장남입니다.그러나 고시왕자는 실은 천무가 쿠데타를 일으켜 시해한 천지(天智)천황의 아들로 보는 것이최근 일본 사학계의 흐름입니다.천지천황은 백제계 의 왜왕이었습니다.백제 무왕(武王)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고시왕자는 천지의 아들이면서 아버지를 배신하여 고구려계의 천무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천지가 자기에게 왕위를 물려 주지 않고 이복(異腹)동생을 왕세자로 삼았기 때문입니다.고시왕자는 천무와 더불어 쿠데타에 성공하면 자신이 왕위 에 오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천무가 즉위해 버렸습니다.
앙심을 품은 고시는 천무의 아들 대진(大津)왕자와 짜서 천무를 시해하고 나서는 대진도 역모(逆謀)로 몰아 사형,자신이 정권을 잡게 됩니다.백제 세력의 복권입니다.
일본 학자 중에도 고시왕자가 「천황」이었다고 보는 이가 더러있었습니다.그러나 역사책에선 그가 천황이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천황이었음을 증명하는 목간이 장옥왕 저택 자리에서 나왔습니다.「장옥친왕(長屋親王)」이라 적힌 나무조각이 그것입니다.』 당시 「친왕」은 천황의 아들이나 천황의 형제들에게만바치는 칭호였다.그러나 장옥왕의 형제 중에 천황이었던 이는 없다.그러고보면 고시왕자가 천황이었다는 결론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 고대사는 허구의 흙으로 빚어진 「역사소설」인가.한국이라는 뿌리를 감추기 위한 그 거대한 날조의 흔적에 모두 놀랐다.
바른 역사가 알고 싶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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