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로서 윤영선은 자신의 희곡으로 간절히 타인과 소통하기를 기도했던 구도자였다. “텍스트는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자기 몸을 열고 자기 몸의 속삭임과 외침을 들려주기를 열망한 채(…) 텍스트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처럼 거기 잠들어 있다. 모든 것이 깨어났을 때, 공간이 시간성을 획득했을 때에야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1997년 발표한 뒤 여러 차례 재공연된 ‘키스’는 이런 그의 바람이 육화된 대표작이다. 언어와 달리 두 몸 사이의 거리를 없애는 키스를 윤영선은 “존재의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불렀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라고 연거푸 묻던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한다. “마”라는 외마디 끝에 그들은 서로 바라보고, 입술이 점점 가까이 간다. 스산한 키스다.
지난해 늦여름, 그가 영원히 눈을 감았을 때 많은 이가 고인의 2005년 작 ‘여행’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견디기 위해서 나무나 풀처럼 술에 취해 몽롱한 눈으로 비스듬하게 이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희망한다. 눈을 부릅뜨고 주장하지 않기를. 넌지시 말을 하기를.” 나무가 되고 싶었던 극작가를 그리워하는 벗과 후배들이 꾸린 ‘윤영선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인 ‘임차인’이 11월 9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02-744-7304)에서 공연된다.
정재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