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29> 기상천외, 주말 골퍼들의 창의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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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호 16면

1번 홀에서 몸을 풀고 있으면 어김없이 누군가 말을 꺼낸다. “스킨스라도 해야겠지? 그렇잖으면 재미없잖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기 골프에 동의하고, 게임은 시작된다.

“골프를 할 때면 적은 돈이라도 내기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주말 골퍼도 적잖다. 우리나라 아마추어 골퍼만큼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을 듯싶다. 주말 골퍼 10명 가운데 9명은 내기를 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수개월 또는 1~2년마다 등장하는 신종 ‘내기 골프’ 방식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다. 특히 아마추어 골퍼들이 즐기는 내기 방식은 기상천외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골프스쿨(PGCC)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뒤 새로 등장한 ‘내기 골프’ 방식에 적응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 ‘OECD’란 규칙에 따라 일정 금액 이상을 거둬들인 사람에겐 ‘오빠 삼삼해’를 적용하는 게임이 유행하는가 싶더니 뒤이어 ‘조폭 스킨스’란 이름의 내기가 인기를 끌었다.

더블 보기를 하면 이전 홀에서 땄던 스킨의 절반을 내놓아야 하고, 트리플 보기 이상을 하면 그때까지 땄던 돈을 모두 내놔야 하는 것이 조폭 스킨스의 규칙이란 건 웬만한 주말 골퍼는 다 알 거다. 버디를 하면 다른 사람이 딴 스킨도 모두 가져갈 수 있다.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하면 그날 내기 돈 전부를 고스란히 챙겨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주 골프장을 찾았다가 이보다 더 진화(?)한 내기 방법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무릎을 쳤다.

“요즘 금융 파생상품이 많잖아요. 골프도 마찬가지지요. 골프 내기에도 파생상품이 나왔답니다.”

동반자는 열심히 설명해 줬다.
“1등이 나오면 1등이 스킨을 가져가는 건 예전과 똑같지요. 그런데 만약 두 사람의 스코어가 똑같다면(튼다면) 3등을 한 사람이 스킨을 가져가는 겁니다.”

실력이 엇비슷한 사람끼리 이 내기를 하게 되면 특히 재미있을 법했다. 만약 두 사람이 보기로 비기게 되면 3등이 스킨을 가져가는 독특한 내기 방식 때문이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이 따라야 스킨을 따낼 수 있는 신종 파생상품이란다. 내기 골프를 부추길 의도는 전혀 없지만 시대상을 반영한 그 창의력만큼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아마추어 골퍼의 창의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얼마 전 ‘작자미상의 글’이라며 지인이 보내준 e-메일을 읽고 한바탕 웃었다. 제목은 ‘내가 골프를 그만둔 이유’.

“도대체 우스운 것이 골프라는 운동이다. 라운드하고 나면 즐겁기를 하나, 친구 간에 우정이 돈독해지기를 하나. 시간은 시간대로 날아가고, 돈은 돈대로 들고. 그뿐인가. 내기한답시고 알토란 같은 돈 남한테 바치고. 공 한 개 값이면 자장면 곱빼기가 한 그릇, 물에 빠뜨려도 의연한 척 ‘허허’ 웃어야지. 인상 쓰면 인간성 의심받지, 자장면 한 그릇 물에 쏟아놓고 웃으면 미친 사람 취급할 게다. 드라이버 하나가 33인치 평면 컬러TV 값에다 비밀 병기랍시고 또 몇 십만원. 잔디 좀 걸었다고 드는 돈이 쌀 한 가마니. 신중하게 치면 ‘늑장 플레이’라고 욕 먹고, 빨리 치면 ‘촐싹댄다’ 욕 먹고….(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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