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일의영어 말하기 A to Z] ‘스토리수첩’으로 말할 거리를 준비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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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단어수첩을 갖고 다니며 영어공부를 한 시절이 있었다. 영어 표현을 적어두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틈나는 대로 외웠다. 그런데 말하기학습을 할 때 수첩이 요긴하게 쓰인다. 대화 전문을 적어두고 암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 읽은 것, 경험한 것 가운데 말하고 싶은 소재를 수첩에 정리해 두라는 것이다. 말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말하는 내용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말도 그렇다. 대구에서 올라온 철민이는 말주변이 없는 학생이었다. 철민이에게 스토리(story)수첩을 이용하게 했다. 수첩에는 유머가 많이 적혀 있었는데 잠깐 화장실에 가거나 대화 중 살짝 수첩을 보면서 철민은 준비한 유머를 말하곤 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 철민은 여전히 과묵한 성격이다. 하지만 이젠 스토리수첩을 보지 않아도 이따금씩 주변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스토리 몇 개는 언제든 전할 수 있다. 수다쟁이는 아니지만 매력적인 이야기꾼으로 바뀌었다.

말하기는 이처럼 일상에서 학습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한국말이든 영어든 분명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 일상의 말하기학습에서 가장 간편한 도구가 스토리수첩인 셈이다. 스토리수첩에 매력적인 말하기 소재를 적어두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 필요한 말의 소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한국의 전래동화, 소설, 영화, TV 드라마, 여행 경험, 성장과정 중 딱 몇 가지만 골라서 영어로 연습하자. 수첩에 스토리 제목, 출처,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야기 말하기)을 시도한 장소와 시간, 자기진단과 친구의 반응을 적을 수 있는 항목을 만들자. 영어가 잘 될 때도 있고, 잘 되지 않는 때도 있다. 나름대로 진단하고 메모하면서 수첩을 활용한다.

같은 스토리를 청중을 바꿔가며 5번만 반복하면 최소한 그 영어 스토리는 자신의 소유가 된다. 이때 처음부터 끝까지 중단하지 않고 길게 말하는 지구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영어 말하기 실력을 상급 수준으로 진입시키려면 길게, 많이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에게 글쓰기를 시킬 때 잘 쓰는 연습 전에 먼저 한 페이지 꽉 채우는 연습을 시키곤 한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우선 양이 많아야 인과관계나 시간순서로 말해보고, 논리적으로도 말하는 연습을 시킬 수 있다. 내가 길게 혼자서 말하는 연습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대화에선 응답만 하게 되고, 발표할 땐 내용을 외워야 하며, 토론할 때는 길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노래방에서 선곡만 잘해도 주목받을 수 있다. 영어 말하기도 그렇다. 말할 소재를 늘 준비해 두고 각기 다른 청중 앞에서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요령이 생기고 자신감도 생긴다. 초보운전자는 익숙하지 않은 길을 만나면 마음이 급해진다. 익숙한 길에서는 운전이 잘된다. 영어 말하기도 익숙함은 절반의 성공을 보장한다. 잘 알고 있는 스토리를 반복하면서 공부하는 게 효과적이다.

신동일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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