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프리즘>영화 "초록물고기"서 깡패두목역문성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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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문성근을 인터뷰하는 일은 스트레스다.기자에게 좋은 인터뷰 상대는 30분만 이야기하면 카피가 떠오르는 인물이다.그러나 문성근은 세시간을 넘게 얘기를 나눠도 도무지 카피가 떠오르지 않는다.「깐깐한 지식인형 배우」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엔 안경 너머의맑은 눈빛과 수줍어하는 미소가 왠지 소년을 연상시킨다.「이웃집아저씨 같은 남자」란 표현을 생각하고 있으면 그는 어느새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 품새로 한국에서의 내각제 가능성으로화제를 돌린다.그래서 이번엔 「어 떤 연기든 소화하는 전천후 연기자」라는 허약하지만 넓은 그물을 던져 보았는데,그는 『난 배우가 아니야』라며 또 빠져나간다.배우라면 상대의 기대에 맞게뭔가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야 할법한데 그에겐 인기스타들을만났을 때 종종 느 꼈던 세련돼 보이려는 포즈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그는 미남도 아니고 섹시한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한 중년남자의 모습으로 자신을 편안하게 드러낸다.
그가 연기를 시작한 것은 85년 서른세살때다.서강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8년을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그는 「눈을 뜨면 똑같은 세상」이 싫어 사표를 던졌다.그리고 80년대 문화운동 단체였던 극단 연우무대에 들어가 『한씨연대기』를 시작 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내 개인적인 창의력을 키울 수 있으면서도 사회운동이 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생각은 시인이고 성직자이면서 80년대 진보진영의 활동가였던 고(故)문익환 목사의 아들로 성장한 그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주위에서 보기에도 수배중인 시국사범(그들도 우리처럼),표백된 정서를 가진 레닌주의자(베를린 리포 트),전태일의 평전을 쓰는 운동권(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같은 배역은 그에게 썩 잘 어울려 보였다.실생활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배우로서의 이미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 러나 현재 촬영중인 『초록물고기』를 포함한 14편의영화에 출연하는 동안 그는 지식인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더 자주 등장했다.『비상구가 없다』에서는 압구정동 오렌지들을 처단하는 사이코 살인범,『세상밖으로』에서는 폭력전과 10범의 탈주범,『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에서는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회사 부사장으로 등장했다.그에겐 이런 악역과 지식인 역할이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배우니까 어떤 역할이든 다 해낸다는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영화를 통해 사회운동을 한다 는 동기에 비춰봐도 그렇다.처음으로 운동권 지식인 이미지를 깨는 배역을 맡았던 『경마장 가는 길』을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운동의 범주에 집어넣는다.
『주인공 R를 「베를린 리포트」에 나오는 주인공이 보면 퇴폐적인 허무주의자이지요.영화 자체도 어떻게 해야 된다는 대안 없이 한국사회에 대한 냉소로 가득하고요.이때문인지 장선우감독이 전화로 출연 섭외를 할 때 「소설 봤어?재미없지」 라고 주저하는 인상을 받았어요.아마 내가 거절할 거라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에요.그런데 저는 그 자리에서 「봤어,재미있던데」라고 대답했거든요.80년대가 정치권력이 사회에 가하는 폭력에 대항하는게 필요했다면 90년대는 일상생활에서 개인 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권리에 대해 말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영 화사가 「포르노그라피」라는 광고카피를 뽑아 홍보했던 영화 『너에게나를 보낸다』도 그는 같은 관점에서 받아들였다고 한다.시국사범의 배역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 80년대적인 상상력이라면 「엉덩이가 예쁜 여자」의 이미지를 내세워 문화 적 진보를 꿈꾸는것은 90년대에 어울릴법한 일이다.그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각론을 변용하는데 뛰어난 인물이라는 인상을 준다.
『스스로 연기자 중에서 이성이 강한 스타일이라는 생각을 해요.어릴 때 지적 열등감을 느끼며 성장해 책을 안보면 괜히 뒤떨어진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었어요.그런 초조함이 오랫동안 나를 밀고 온 힘이 됐지만 한편으론 자연스런 감성 을 억누르는원인도 됐던 것같아요.』 한때 그는 자신이 연기자로 부적합하다는 생각때문에 포기할 생각도 했다고 고백한다.그러나 한양대 최형인 교수의 『모든 사람은 훈련을 하면 연기자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생각을 바꾸고 집중적인 연기수업을 받았다고 한다.그러다 어느날 신영복 교수가 쓴 글귀를 대사로 연습하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순간이 있었는데,그때의 마음이 참슬프면서도 편안해 『이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연기하면서 그가 새롭게 꿈꾸게 된 삶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감성에 관한 얘기도 해석하듯 명료하게 할줄 안다.이미 그는 감성과 이성,육체와 정신과 같은 구별이 불필요한 마음이란영역에서 세상을 내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어떤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느냐는 질문에 『감수성이 열린 사람을 좋아 하지만 제발 합리적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그리고 감성적인 것과 합리적이란것은 전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옆에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아 20대를 즐거워하는 것 자체를죄스러워하면서 보낸 40대.그는 땅 좁은 나라의 스포츠가 아니라는 근본주의가 발동해 주위의 강력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직 골프채를 잡지 않고 있다.여전히 그는 아버지와 과거와 주위로부터 약간의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걸까.그의 아름다움은 행복하게짐을 이고 가는 모습에서 나온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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