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況을산다>4.불황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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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3김(金)이 내년 대선을 겨냥한 「기(氣)」싸움에 혈안이 돼있는 가운데 우리 경제가 불황,아니 단순한 불황을 넘어서 구조적 위기라는 아우성이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제기되고 있는 「경제 대통령론」이 보여주듯이 「불황의 정치학」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불황의 정치학」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크게 보아세가지다.우선 정부와 정치권이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단기적으로해야할 일,중장기적으로 할 일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어설픈 경제대통령론에 의한 불황의 선거쟁점화다.야권이 집권당을 공격하기 위해 불황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제기하면 집권세력은 정권재창출을 위해 중장기적인 국민경제에악영향은 아랑곳없이 단기적 효과를 노린 인위적인 경제부양책을 동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치논리에 의한 경제왜곡의 증후군들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경제위기 타파를 위해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목청을 높이면서도 내년 예산안 편성에 있어 대선을 겨냥해 관변단체들의 예산을 이미 대폭 증액시킨바 있다.경제적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각종 대통령 공약사업,불요불급한 선심성 예산 역시 대폭 책정해 놓고 있는 실정이다.나아가 야당의원의 호화쇼핑 파동이 보여주듯이 정치권의행태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같은 어려움속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무리하게추진하는 것은 『내 임기중에 한국을 선진국에 진입시켰다』는 과시욕에 기초한 정치논리의 또 다른 예다.
결론적으로 야당은 정략적인 불황의 선거쟁점화를 자제해야 하며,정치권과 정부는 국제경쟁력 10% 배가운동을 국민에게 강요하기에 앞서「고비용.저효율」정도가 아니라「고비용.마이너스효율」인한국 정치의 국제경쟁력을 배가하기 위한 스스로의 군살빼기등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또 정치논리에 의한 예산을 대폭 삭감,재조정해야 하고 OECD가입 역시 미뤄야 한다.
불황은 사회 각 부문에 있어 엄청난 고통을 야기시키고 있으며또 이의 극복을 위해 적지 않은 고통을 요구하고 있다.정치의 기능이 사회적 갈등의 조정에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단기적인 면에서 「불황의 정치학」의 또다른 핵심은 이같은 고통,즉 사회적 비용을 효율성과 형평성의 원리에 기초해 어떻게 사회 각 부문에 배분하느냐는 「공정한 고통배분의 정치」다.
고통배분이 중소기업,고용불안층등 사회적인 약자들의「고통전담」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소임이다.
효율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살리는 방법으로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스웨덴 모형이다.
즉 정부는 국제경쟁력이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도태시켜 효율성을 살리되 피해기업에 대해서는 업종전환을 위한 자금및 기술지원을,종업원들에게는 기술훈련을 제공해 재활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동시에 이에 필요한 자원은 호황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수혜세력이 부담하도록 해 사회적 형평성을 실현시키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밖에 이같은 대응을 위한 특별대책을 마련하고 내년 예산 역시 이런 방향으로 전면 재조정돼야 한다.
***고성장 중독증 벗을때 마지막으로 이번 불황이 21세기를향한 우리 사회와 경제의 체질개선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정치권이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우리가 고속성장에 중독돼 있다는 점을 이번 기회에 냉철하게 자각하고 단순한 고속성장이 아닌 환경,삶의 질등 다양한 가치들을 고려한 「적정성장」모형을 마련해야 한다.나아가 87년민주화 이후 우리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고 있지만 정치권이 아직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과거의 「개발독재」를 대체할 수있는 새로운 민주적인 경제발전 모형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는 노동과 자본등 다양한 사회적 이익을 민주적으로 조정하면서 지구화등 새로운 국제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업의 체질개선을 유도해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발전모형이다.
여야는 비생산적인 「기(氣)싸움」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이에대한 다양한 모형을 놓고 진정한 의미의 「경제대통령」론의 경쟁을 해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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