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78>‘게임즈맨십’ 부추기는 사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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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16면

챔피언의 계절이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면 다시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뮤지컬 ‘맘마미아’로 한 번 더 뜬 아바(ABBA)의 ‘The winner takes it all’과 퀸(Queen)의 ‘We are the champion’이다. 두 노래는 종목 불문하고 챔피언결정전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는 노래들이다. 승자가 결정되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어나오는 장면에서 두 노래 가운데 하나가 울려 퍼지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 멜로디도 낯설지 않다. 좋은 노래들이다.

그런데 익숙한 장면·멜로디와 달리 귀에 아쉬운 대목이 있다. 노래를 만든 사람이 그럴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인사이드’의 가사 해독 깊이가 얕아서겠지만 승리지상주의가 지나치게 표현되지 않았느냐는 거다. ABBA는 말한다. “The winner takes it all, loser standing small”이라고. 승자가 전부를 갖고, 패자는 초라해진다고. 그리고 후렴에서 한 번 더 말한다. “The winner takes it all, loser has to fall.” 마찬가지로 패자는 몰락해갈 뿐이라고. 이 부분이 좀 더 따뜻하게 표현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거다. Queen도 “We are the champion”이라고 몇 번을 반복해 외친 다음 “No time for losers”라며 패자를 싸늘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좀 더 부드러웠더라면.

왜 좋은 노래,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될 부분을 갖고 꼬투리를 잡느냐 하면 10월 8일 야구와 축구가 동시에 보여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 때문이다. 그날 사직구장에서는 롯데와 삼성의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렸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는 전북과 전남의 K-리그 삼성 하우젠컵 4강 플레이오프가 열렸다. 야구는 6시에, 축구는 7시에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프로스포츠의 포스트시즌에다 묘하게 야구는 영남(대구:부산), 축구는 호남(전북:전남) 라이벌의 매치업이었다. 뜨거운 명승부를 기대했다. 그리고 그에 따른 감동과 추억을 기대했다.

야구장은 관중석에서 탈이 났다. 승부가 삼성의 일방적인 승리로 기울자 롯데 팬들이 삼성 응원단상에 올라간다거나, 일부는 경기가 끝나고 돌아가는 삼성 선수에게 욕을 하다 말리는 경찰을 밀쳤다. 축구장은 그라운드부터 탈이 났다. 경기 내내 과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양팀 합쳐 경고가 9개, 파울이 55개(!)나 나왔다. 지나친 승리욕 때문이었다. 거기다 심판은 운영이 매끄럽지 못했다. 두 팀 다 불만이 쏟아졌다. 관중의 반응으로 이어졌다. 종료 직전 결국 물병이 그라운드 안으로 날아왔다.

과거보다 많이 성숙했고 일부가, 아주 일부가 그랬을 거라고 믿지만 그래도 아쉽다.

프로스포츠 경기장에 넘쳐나듯 팽배해 있는 승리지상주의가 우리 사회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다. 이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반칙도, 상대를 함정에 빠뜨리는 술수도 용인되는 ‘게임즈맨십(Gamesmanship)’이 내가 좀 늦게 뛰더라도 넘어진 상대에게 손을 내미는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리그도, 구단도, 관중(팬)도, 그리고 미디어까지도 그런 게임즈맨십을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지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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