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을 찾아서] ‘나’를 무너뜨려야 마음공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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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빙 바람 덕분일까. 요즘 명상이 유행이다. 그러나 개인의 안녕을 위한 명상에는 깨달음이 없다. 진정한 마음 공부란 자아를 없애는 과정이다. 그 곳에 참된 진리가 있다.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이기에 의심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그것은 국가나 가족과 같은 견고한 제도부터 시간이나 언어와 같은 근본적인 약속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이는 우리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얽어가는 잘 짜여진 구조다. 현대 철학은 이를 신화라 부른다. 그럴듯한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나긴 인간의 ‘진리 찾기’ 여정 속에서도 그 위상이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아니 더욱 더 튼튼하게 인간을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아다. 모든 것이 거짓이어도 지금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의 존재 자체는 거짓일 수 없다는 믿음. 이것이 인류 역사의 강력한 엔진이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티베트의 초걈 트룽파는 『초걈 트룽파의 마음 공부』에서 우리가 저마다 단단한 개체라는 믿음 자체가 신화라고 말한다. ‘나(에고)’도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히 무너뜨리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라고 단언한다. 한국의 자허 스님도 저서『숨 명상 깨달음』에서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자기를 낮추거나 희생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책에는 자기를 부정하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담겨 있지는 않지만 자아를 소거하라는 충고가 깊게 깔려 있다. ‘마음공부’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타난 두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첫 메시지가 만만치 않다.

최근 명상에 관한 책이 넘쳐나고 있다. 이는 ‘웰빙’바람의 한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달리거나 덤벨을 들면서 몸을 가꿔가는 건강법에서 마음의 건강까지 키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가나 단학과 같은 수행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감수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깊은 시름과도 연관 있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웰빙은 이 시대에 대한 또 다른 저항일 수 있다.

하지만 웰빙의 깃발 아래 사람들에게 ‘판매’되는 수행법은 그 자체가 상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불한 만큼 무언가 얻을 것을 기대한다. 수행 자체가 근본적인 변화를 내포하지 않는다. 수행이나 그에 따른 명상은 현실을 견딜만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주유소로 이해되기도 한다. 혹은 현실을 잠깐 멈추고 쉬어가는 자리로 마련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잘 살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마음공부를 하는 셈이다.

이 두 책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출간됐다. 출판사가 이러한 때 이런 책을 내놓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책들은 이러한 흐름을 크게 경계한다. 트룽파는 동양적 정신에 대한 상업주의적 접근을 ‘영적 수퍼마켓’이라고 비판한다. 자허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수련 단체에 대한 걱정을 빼놓지 않는다. 웰빙 바람의 수혜를 입어 독자에게 다가온 두 책이 실은 웰빙 시대의 반명제임을 자처하고 있다.

트룽파의 『…마음공부』는 마음공부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불교적 가르침을 전하는 철학서다. 하지만 지식을 전달하려는 책은 아니다.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트룽파식 주석서라고 보면 될 듯하다. 하지만 불교가 낯선 이들이라면 처음에는 고전을 면하기 힘들다. 우선 ‘영적 유물론’이라는 개념을 넘어가야 한다. 영적 유물론은 에고(자아)에 대한 강한 집착에서 시작한다.

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무언가를 개념화하고 언어로 표현하고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 매달린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이러한 과정이 겹겹이 쌓여 진실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명상이 필요한 때다. 그러나 트룽파는 깨달음을 고통스런 수행과 연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일상에서의 깨달음을 중요시한다. 자하도 마찬가지다. 깨달음의 경지를 하늘에서 일상으로 끌고 내려오는 시점에서 독자는 부담을 약간 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시점에서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음공부는 완전히 열린 나를 깨닫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된다. 그리고 사랑·자비·열반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로 이어진다. 책이 근본으로 치달을수록, 내용을 지식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깨달음의 계기로 삼을지, 아니면 책을 덮어버리고 다른 웰빙 책을 찾을지는 독자 몫이 된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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