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푸는 IMF … 위기의 세계 경제 ‘구원투수’ 될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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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원-달러 환율이 이틀째 떨어지면서 1300원 선에 근접했다. 하지만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하루 변동 폭이 235원에 달하는 등 불안한 모습은 여전했다.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달러를 세고 있다. [연합뉴스]

최후의 ‘구원투수’ 국제통화기금(IMF)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치명상을 입고 부도 직전에 내몰리는 국가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IMF로선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11년 만의 본격 등판이 된다. 하지만 아시아 몇몇 국가만 처리하면 됐던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IMF의 자금 규모나 능력으로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동시다발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위기에 처한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긴급 금융지원 시스템을 가동시켰다”며 “어떤 나라의 요구에도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1995년 도입된 긴급 금융지원은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국가에 대해 대출을 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스트로스칸 총재는 상황이 다급한 만큼 보통 수주일이 걸리는 절차를 열흘 내로 단축하고, 대출 조건도 완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IMF는 한동안 잊혀진 존재였다. 세계 경제가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유동성도 넘쳐나면서 개발도상국들은 돈을 빌려주면서 까다로운 조건을 내거는 IMF를 굳이 찾지 않더라도 국제 자금시장에서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었다.

IMF의 대출 총액도 2003년 1100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최근 170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돈을 빌리는 곳이 없으니 적자가 쌓이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가 IMF를 다시 소방수로 불러낸 것이다.

‘IMF행’의 유력 후보는 아이슬란드가 꼽힌다. 아이슬란드는 은행권의 해외 채권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10배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신용경색이 닥치자 은행들이 줄줄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3대 은행을 모두 국유화하고 예금 무제한 보증 조치도 취했다. 하지만 1주일 새 통화 가치가 반 토막이 나면서 금융시장의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다.

영국 정부는 아이슬란드 은행의 영국 내 자산을 동결시켰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인근 국가 중앙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별 반응이 없었고 러시아에까지 손을 벌린 상태다. 가이어 하르데 총리도 9일 ‘IMF행’에 대해 “아직 결정한 바는 없지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에선 파키스탄이 국가부도설에 휘말려 있다. 현지에선 대형 은행 파산설이 돌면서 인출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 가치는 88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다급해진 파키스탄 정부가 곧 미국으로 특사를 보내 100억 달러의 긴급 자금을 요청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위기가 지속될 경우 국가부도가 도미노처럼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8일 크레디스위스(CS)의 자료를 인용해 “동유럽의 불가리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우크라이나·라트비아·루마니아·헝가리 등이 위험에 취약하다”고 보도했다.

선진국들까지 IMF에 손을 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IMF가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2000억 달러(약 260조원)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유럽 등에서 금융위기 진화를 위해 이미 수조 달러를 투입한 것에 비하면 크다고 할 수 없는 규모다.

스트로스칸 총재는 “선진국들까지 도움을 요청하게 될지는 지금으로선 누구도 알 수 없다”며 “당장은 필요없지만 기금 증액을 위한 여러 가지 수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국제 금융시장의 ‘최종 대부자’로 환율 안정과 회원국에 대한 자금 지원이 주요 업무다. 브레튼우즈 협정에 따라 1945년 창설됐으며 본부는 미국 워싱턴에 있다. 회원국의 경제 규모에 따라 출자금을 거둬 기금을 조성하는데 현재 185개 회원국이 출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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