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 “친구야 이번엔 내가 이겼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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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 발짝 앞서는 데 30년이 걸렸다.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하우젠컵 준결승전에서 전남 드래곤즈는 전북 현대를 3-1로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전남 박항서(사진左) 감독은 곽태휘(2골)와 이규로(1골)의 활약에 힘입어 ‘30년 지기’인 전북 최강희(사진右) 감독을 상대로 짜릿한 승리를 맛봤다.

1959년 1월생인 박 감독은 59년 4월생인 최 감독보다 생일이 빠르지만 생일 빼고는 최 감독에게 앞서본 기억이 없다. 박 감독이 81년 육군 충의팀에 선수로 입대했을 때 최 감독은 이미 병장이었다. 박항서가 97년 김호 감독이 이끄는 수원 삼성의 코치가 됐을 때도 최강희는 1년 전부터 수원 선수들을 조련하고 있었다.

최 감독은 박 감독보다 사령탑 데뷔도 빨랐다. 2005년 8월 경남 FC에 부임한 박 감독보다 한 달 먼저 전북의 사령탑에 오른 최 감독은 그해 FA컵 우승을 일궈냈고 2006년에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컵도 따내며 박 감독을 앞서 나갔다.

허물없이 통화하고 가족 식사 모임도 자주 하는 사이지만 박 감독은 최 감독을 한번쯤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8일 경기에 앞서 박 감독은 “최 감독이 목표 성취에 열정이 대단한 만큼 쉽진 않겠지만 이제는 내가 앞설 때도 됐는데”라며 의욕을 드러냈고 결국은 지략 대결에서 승리했다.

‘트레이닝복 효과’도 톡톡히 봤다. 지난달 13일 K-리그 부산전에서 0-2로 완패한 이후 박 감독은 정장을 벗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섰다. 처음 트레이닝복을 입은 20일 광주전 이후 전남은 4승1패의 상승세를 타고 있다. 박 감독은 “군인이 전투복을 입으면 편한 것처럼 나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경기장에 나서면 마음이 편해진다. 트레이닝복에 붙은 ‘드래곤즈’ 마크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기도 한다. 희한하게 집중이 잘 된다”고 말했다. “내면적으로 성숙하면 그때 양복을 입을 것이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2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컵대회 우승을 놓고 수원 차범근 감독과 마지막 대결을 펼친다. 그날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와 감독 데뷔 후 첫 우승컵에 입맞춤할지 지켜볼 일이다.

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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