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무용가 '성수 안 픽업그룹' 공연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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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재미무용가 안성수씨의 「성수 안 픽업 그룹」 한국데뷔무대(19~22일.동숭아트홀)는 공연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한국무용계와는 아무 인연도 없는 낯선 인물이 뉴욕을 주무대로 활동하며 그곳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과연 어떤 춤을보여줄지 궁금증을 자극한 것이다.그가 줄리아드예술학교를 다닐 때부터 벌인 활발한 공연과 연이은 국제무용제 수상,유명 무용단객원안무경력이 기대를 갖게한 반면 그의 실력이 부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도 했 다.
공연성과는 일단 일반 무용팬들에게 춤을 보는 재미를 선사한 성공적인 무대였다고 할 수 있다.일부 무용평론가들은 아무 주제없이 강한 비트에 빠른 움직임만 강조하는 미국적인 경향에 지나치게 충실해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비판적 견해를 보 이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현대무용도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즐길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학연으로 객석 대부분이 채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한국 현대무용의 현실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그의 공연에 3분의2 이상의 객석이 채워진 것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번 공연에 선보인 작품은 『빔』과 『퀸』『홧에버』『달밤의 체조』등 네편의 소품이었다.상당수의 한국 현대무용 안무가들이 40분 이상의 대작에 욕심을 내고 무거운 주제를 관객들에게 강요하는데 반해 이 작품들은 8분에서 18분의 짧은 시간동안 특별한 주제나 드라마적 요소가 전혀 없는 안성수 안무의 특징을 뚜렷이 드러냈다.
처음 무대에 오른 작품 『빔』은 팝가수 프린스의 노래 『세븐』을 들으면서 구성한 것으로 발레.재즈.힙합등 여러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작품이다.피부색과 키.성별이 각기 다른 무용수들이만들어내는 대칭적인 춤구조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다.
이번에 공연한 8명의 무용수중 한사람인 킬리 슬로를 위해 만들었다는 『퀸』은 인도 팝송을 배경음악으로 한데다 두 손바닥을하늘을 향해 펼치는 동작등이 동남아춤을 연상시켰다.
이번 공연에서 안성수씨가 출연한 유일한 작품인 『홧에버』는 음악없이 남자무용수 세명의 춤이 한동안 계속되는등 침묵과 이를뛰어넘는 역동적 움직임으로 긴장감을 유발했다.
이번에 초연된 『달밤의 체조』는 반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치밀한 안무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복잡할 수 있는 동작은 다 포함시켜 이에서 한치라도 벗어나면 무용수들이 서로 부딪치게 될정도로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움직임이 빠른 춤이 다.
이번 공연은 한마디로 「무용은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라는 안성수의 무용철학에 충실한 무대였다.그의 바람대로 관객들은 1시간여동안 춤에 몰입해 스스로 무대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있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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