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왕자호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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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중예술은 시대의 산물이다.1950년대 전쟁의 폐허속에서 고난의 연속인 하루하루를 살던 사람들은 어디선가 정신적 위안을 찾아야 했다.여성국극은 이같은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켰다.
임춘앵(林春鶯)은 여성국극의 스타중 스타였다.그녀로부터 여성국극이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1924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그녀는 판소리 여섯마당을 익혔으며,승무.검무.살풀이 등에서 탁월한 경지에 올랐다.48년 박귀희(朴貴姬) .김소희(金素姬)등과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햇님 달님』『춘향전』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51년 여성국극단 「임춘앵」을 창단,67년은퇴할 때까지 여성국극계를 석권(席卷)했다.특히 『무영탑』은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여성국극은 창극(唱劇)의 한 형태다.창극은 판소리로부터 유래했다.1인극 판소리가 연극 형태의 창극으로 발전한 데는 중국에서 들어온 경극(京劇)의 영향이 컸다.19세기말 서울 청계천 중국인거리에 경극을 주로 하는 청국관(淸國館)이 세워지자 강용환(姜龍煥).이동백(李東伯)등 판소리 명창들은 이곳에 드나들면서 경극의 다창(多唱).분창(分唱)에서 판소리가 나아갈 새로운가능성을 발견했다.
1902년 최초의 황실(皇室)극장인 협률사(協律社)에서 대화창(對話唱)형태로 시작된 창극은 1908년 원각사(圓覺社)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그후 국권상실과 함께 밀려들어온 일본 신파극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다 가 1930년대 조선성악연구회가 결성,당대최고의 명창들이 참여하면서 전기(轉機)를 맞았다.그러나 일제말기 암흑기에 들어서 크게 위축돼명맥마저 위협받았다.
해방후 「여성만으로 이뤄진 창극단」으로 출발한 여성국극은 50년대에 전성기를 이뤘다.그러나 영화와 TV의 발달,소재빈곤,후진양성 소홀 등으로 60년대 들어 급속히 쇠퇴했다.그후 몇차례 재기가 시도됐으나 옛날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했 다.
오는 26~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선 왕년의 스타 김경수(金慶洙)씨가 이끄는 김경수국극단의 『왕자호동』이 무대에 오른다.
서울공연이 끝나면 지방공연을 거쳐 해외공연에도 나선다고 한다.
지금은 중년이상이 됐을 여성국극 팬들에겐 젊은 시 절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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