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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아시아의 시대가 다가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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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41년 미국 타임지 창립자인 헨리 루스는 『유럽시대가 가고 미국의 세기가 왔다』고 선언했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 많은 사람들은 21세기는「아시아의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불과 반세기전 오랜 역사와 문화적유산에도 불구하고 경제력의 결핍으로 국제사회의 「변방」이었던 아시아는 지난 20~30년간의 놀라운 경제적 성취로 그 위상은크게 높아졌다.아시아의 일원인 우리에게도 「21세기 아시아 시대의 도래」는 즐거운 전망이다.그러나 아시아는 과연 그 런 전망에 걸맞은 기반을 쌓고 구조적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는가.냉정히 말해 아시아는 이제 겨우 유럽과 미국이라는 세계경제의 기존 양대권역과 정립(鼎立)하는 제3의 권역으로 자리잡았을 뿐이다.「아시아의 세기」가 환상만은 아니지만 그 런 기대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훨씬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할 지도 모른다.빈약한 사회간접자본과 부존자원,고급인력의 부족,경제력의 차이와 상이한 이념,민족.종교간 갈등과 영토 분쟁….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이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21세기 아시아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편집자註] 지난 5일 오후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시 쌍둥이빌딩 84층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하나의 거대한 동화상(動畵像)이었다.콸라룸푸르를 동남아의 거점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구상에 따라 건물을 짓고 길을 닦는 포클레인과 굴착기 굉음이 도심을 덮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말레이시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단계와 속도차이는 있을지언정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베트남등 아세안국가는 물론 중국.인도등 아시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21세기가 아시아 시대가 될 것이란 얘기는 바 로 이같은 역내(域內)의 역동성(力動性)때문이다.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에 이어 동남아와 남아시아가 다시 용틀임을 시작했다.특히 중국.인도의 발전잠재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도이타 미치루(통田滿)경제예측통계과장은 『21세기는 아시아가 지구촌의 발전을 견인하는 기관차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70년대 막이 오른 성장은 아시아 곳곳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한세기 동안 아시아에서 근대화를 이룬 나라는 엄격히 말해 일본밖에 없었다.그러나 아시아 전체는 이제 「주변」에서 「중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국제전략문제연구소(ISIS) 누르딘 소피소장은 『현 추세라면 21세기는 아시아 시대를 거쳐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민주적인 지구촌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아시아가 21세기의 세계 경제지도를 바꿔놓을 것이란 전망은 각종 분석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세계은행(IBRD).국제통화기금(IMF)등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70년 전세계의 14.7%에 불과했던 아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오는 2020년에 전세계의 37.1%로 미주(31%)와 유럽(25.8%)을 따돌릴 것으로 전망됐다 .

<그림 참조> 이러한 성장의 결과 아시아는 오는 2005년 미국과 유럽을 합한 것보다도 더많은 구매력을 지닐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경제력이 모든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방대한 면적과인구에 경제력까지 더해진 아시아는 앞으로 보다 다양하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
다른 권역의 움직임 또한 아시아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백호주의(白濠主義)를 표방했던 호주가 탈구입아(脫歐入亞)를 강조하고 있고,미국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로,유럽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통해 아시아와의 협력강화에 나서고있다.
아시아를 하나로 잇는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다.90년대로 들어서면서 아시아 역내의 교역은 대미(對美)무역을 웃돌기 시작했다.일본과 그뒤를 이은 아시아의 네마리 용(龍)등 발전단계가 앞선 국가들의 역내투자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국가연합(ASEAN)은 동남아의 구심체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아시아」의 발신지,여타 권역과의 접점이 되고 있다. ASEAN 사무국 기니 아치나스 공보담당은 『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작업이 지역발전을 위해 옳으냐,그르냐 하는 논란은 있다』면서도『ASEAN은 일단 아시아경제협의체(EAEC)를 통해 한.중.일과의 경제통합을 추진중이며 APEC과 A SEM을통해 북미와 유럽을 잇고 있다』고 강조한다.전세계에 5천7백만명,이중 동남아에 뿌리내리고 있는 5천3백만명의 화교는 아시아국가간 경계를 허무는 첨병이 되고 있다.
세계 최대 화교재벌인 정저우민(鄭周敏)필리핀 탄유그룹 회장은『화상(華商)의 자금과 네트워크는 역내투자 활성화와 통합의 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놀라운 성장궤도를 질주,이제 21세기의주역으로 발돋움하려는 아시아의 미래가 결코 밝은 것만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투자청의 아스릴 노에르 사무총장은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인적자원의 부족』이라고 말한다.단지 「풍부한 인적자원」은 따라잡기 수단은 되겠지만 세계사를 리드하려면 「창조적 인재」가 필요하다.
경제발전에 따른 도시화와 공해문제도 위험수위며,빈부격차와 계층간 반목은 아직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자카르타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 만수르(41)는 『택시 운전 9년동안 사회는 무척 발전한 것같지만 생활수준 자체는 나아진 것이 없다』고 푸념했다.
또한 종교.영토분쟁,과거사 문제등은 여전히 많은 앙금을 남기고 있다.이런 불씨들은 내전으로,또는 아시아에서의 패권경쟁으로언제라도 불거져 아시아의 통합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들이다.
방대한 인구를 포용하기에는 부족한 식량,에너지사정도 난제다.
역내의 공급부족과 고성장에 다른 수요증가는 자칫 위기적 상황을초래할 수 있다.
지난 1백여년의 어두운 잠에서 깨어난 아시아가 21세기 어떤모습을 할 것인가는 「우리」를 포함한 「아시아인」의 자각과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아시아 와이드 특별취재팀> 박태욱(국제경제팀장),심상복.김형기.홍승일.유권하(국제경제팀),오영환.유광종(국제부),이중구(경제2부),조용철.방정환(사진부),노재현.이철호.김국진(일본총국),문일현(베이징특파원),유상철(홍콩특파원),안성규(모스크바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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