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동독 주민 80% 이상 통일 전 회귀 원치 않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1989년 11월 9일 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며 에버하르트 홀트만(62·사진)은 감격했다. 서독 정치학자였던 그는 ‘통일 뒤 옛 동독의 변화’를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에 92년 옛 동독의 할레로 이주, 할레-비텐베르크 마르틴 루터 대학에서 비교정치학을 가르쳐왔다. 독일 학술진흥재단의 ‘특별연구센터 580’이라는 연구 집단 소속으로 옛 동독 지역의 체제전환에 따른 각종 변화를 중점 연구하고 있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이 최근 주최한 ‘초국가적 관점에서 본 체제전환: 독일과 한국’ 국제학술회의에 참석차 방한한 홀트만을 만났다.

-‘특별연구센터 580’은 어떤 일을 하는가.

“사회학·정치학에서 경제학·심리학까지 여러 분야에서 옛 동독의 체제 전환을 다루는 연구집단이다. 80여 명의 학자가 17개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학제간 연구를 하는 게 특징이다. 2001년 시작, 2012년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관련 연구 중에서는 최대 규모다. 현재 진행형이라 성과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연구를 계속할수록 흥미로운 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옛 동독 지역 주민들이 민주주의 체제에 적응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경우도 있다. 지역 주민들이 시 의회·당국을 압박하는 독립 기구를 만들자 옛 서독 지역에서 이 제도를 역으로 도입한 사례도 있다.”

-한국 일부에선 통일 비용 부담 때문에 통일을 고민하는 목소리도 있다.

“북한이 독재 체제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통일 전부터 동서 교류를 많이 해왔던 독일의 경우를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통독 경험에서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통일이 새로운 기회였다는 점이다. 독일에서도 통일 비용이 높았고, 불확실성에 따른 혼란도 있다. 중요한 건 인내다. 통일은 궁극적으론 학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이득이 됐다. 설문조사를 하면 80% 이상의 옛 동독 주민이 통일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다. 학자로서 이런 역사적 현상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기쁘다.”

-개성 관광을 다녀왔는데.

“남북한 주민이 친척처럼 서로 사진을 찍고 얘기를 나누며 교감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금강산 피격 사건 같은 비극도 있었고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차이도 있다. 하지만, 개성에서 나는 원래 하나였던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이 간직한 통일에 대한 열망을 느꼈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