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관리공단,건강手記 금상 "나는야,애기똥풀" 요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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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움막 건너편 밭 가운데엔 부서진 탱크 한대가 긴 코를 쳐든채 죽어 있었다.어머니가 옹기장사를 나가시면 나는 혼자 곰팡내 나는 방에서 보리밭 사이로 탱크의 잔해를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나는 늘 허기진 배를 안고 살았다.
여섯살 때까지 걷지를 못했고,나무젓가락같은 여린 뼈대에 가죽을 덧씌운 다리로 벌벌 떨며 일어서다 주저앉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가 넘어진 자리에는 애기똥풀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나는 노란 꽃과 줄기에서 나오는 노란 진액이 밥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마저 했다.중학교때 공던지기 최고기록은 13에 불과했고,농구공은 아무리 힘껏 던져도 머리 위에서 다시 떨어졌다.
고등학교때는 읍내까지 8㎞의 통학거리를 2시간이나 걸려 다녔다.하루 두끼만 먹는 영양부족 상태에서도 뛰고 걷고하며 체력을기르려 애를 썼다.내가 처음으로 소화기관이 약하다는 사실을 안것은 너무 배가 고파 남의 밭에서 무를 뽑아 먹고서였다.
주인에게 혼쭐이 난 것은 물론이고 먹은 무 때문에 설사를 한것이었다.
군입대 신체검사에서 165㎝.40.5㎏으로 심사관의 놀림감이됐다. 교원양성소를 통해 준교사가 됐다.관사에서 어머니와 함께살면서 처음으로 경험한 하루 세끼 식사.
그러나 된장이 아닌 다른 음식을 나의 소화기관은 허용하지 않았다.그렇게 먹고싶었던 계란,회식때 먹은 진수성찬을 모두 거부한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음식을 적게,꼭꼭 씹어먹는 습관을 들이며 적응해 나갔다.파와 마늘.돼지고기도 아주 적은 양부터 먹기 시작했고 틈만나면 줄넘기와 뒷동산을 오르는등 체력단련을 병행했다.
함께 근무하던 현재의 아내와 결혼했을 때 나의 체중은 47㎏.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아내의 도움으로 고른 음식섭취,근육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나는 현재 63㎏의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나는 오전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어릴적 애기똥풀을 생각하며 「겸손과 긍정적 사고,꾸준한 운동,소식,이웃에 봉사하는 마음을 갖자」는 평범한 건강수칙을 마음에 새긴다.
안상명 서울미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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