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3세 게이코 리 타고난 재즈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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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보통 재즈 여가수라면 무난한 스윙 곡들을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죠.그런데 게이코 리의 경우는 달라요.본격적인 재즈곡들을무난히 소화해내거든요.재즈의 저변이 넓은 일본에서도 그녀는 아주 독보적인 존재예요.』 일본에서 재즈연주자로는 최고의 명망을누리고 있는 트럼펫 연주자 히노 데루마사가 언젠가 기자에게 들려준 말이다.그는 『게이코 리가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인 무명시절 우연히 노래를 듣게 됐는데 가능성을 대번에 알아봤다』며 그녀의 대성 을 낙관해마지 않았다.
『여러 가수들과 함께 연주해 봤는데 게이코 리는 공연하기에 대단히 편한 가수죠.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리듬을 타는 감각이 탁월해요.』 국내 방송프로그램이나 재즈클럽에서 그녀와 함께몇차례 연주한 경험이 있는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의 평가다.
지난해 첫 음반을 낸,아직은 신인에 가까운 재일교포 3세 가수 게이코 리(31.한국명 이경자.사진).이런저런 평가를 종합해 보면 그녀는 동양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재능을 지닌 재즈가수임에 틀림없다.자신도 『반쯤은 소질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라고생각하고 있다.데뷔음반 『이매진』이 일본의 재즈음반 판매순위에서 1위에 올라설 정도로 성과를 거두자 그녀는 여세를 몰아 지난 6월 두번째 음반『Kickin' It』을 냈다.이 음반 역시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완성한 것 으로 명프로듀서 존 사이먼의 지휘아래 론 카터(베이스).그레디 테이트(드럼)등 1급 연주자들이 녹음에 참여했다.
그녀는 활동무대를 고국인 한국으로도 넓힐 생각.두장의 음반이모두 국내시장에서 발매됐고 MBC-TV의 『일요예술무대』등 방송프로그램에 몇차례 출연,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직 한국국적을 갖고 있지만 한국어를 거의 못한다.모두 영어로 돼있는 음반만으로는 흑인 재즈가수로 착각할 정도로 게이코 리의 음악에서 국적을 찾아보긴 힘들다.
한국의 음악도,그렇다고 일본의 음악도 아닌 재즈를 하는 그녀에게 부질없는 질문인줄 알면서도 『한국인이란 사실이 음악에 영향을 끼친 점이 있느냐』고 물었다.
『별로 의식하지 않아요.그런데 가끔은 내 노래을 듣고 판소리를 떠올리는 분도 있다고 해요.어렸을 때 할머니가 판소리를 틀어준 적이 있고 한국민요 음반을 사서 듣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긴 한데 과연 음악에까지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 겠어요.그보다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감정표현이 풍부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영향이 음악에 남아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글=예영준.사진=오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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