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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여러분, 되도록 한국말 쓰고 한국 음식 드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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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의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한 캐슬린 스티븐스 미국 대사의 '감성외교'가 눈에 띈다. 대사관 직원들에게도 되도록 한국말을 하고 한국 음식을 먹으라고 독려했다고 한다. 때 마침 1966년부터 81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한 평화봉사단원들이 6일 한국을 방문한다. 미 지도층의 '프론티어' 정신 평화봉사단의 과거 현재를 함께 살펴봤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지난달 23일 서울에 온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다. 근무 첫날인 24일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순두부 찌개를 먹는 모습이 기자들의 눈에 띄었고, 며칠 뒤 주말엔 북한산에서 수행원 없이 등산객들과 소탈하게 말을 나누는 모습이 외교가에 회자됐다. 역대 한국을 다녀간 19명의 주한 미 대사에게선 볼 수 없었던 분위기다. 평화봉사단(Peace Corps) 출신의 대사이기에 가능한 ‘감성 외교’다. 외교 담당 기자들이나 일부 정부 관리는 그를 ‘심 대사’로 부른다. 한국 이름이 ‘심은경’인 까닭이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심은경입니다.” 입국 기자회견장인 인천 공항에서 스티븐스(사진) 대사가 한국민에게 던진 첫 인사말이다. 그가 유창한 한국말로 시작하자 한국 기자들도 편하게 한국말로 질문을 시작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양해를 구한 뒤 영어로 답했지만 질문에 대한 통역은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회견의 상당 부분을 자신의 평화봉사단 경험과 연결시켰다. “33년 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가 다시 미국 대사로 한국에 오니 가슴이 벅차다”며 “한국에서 평범한 생활을 맛본 것은 행운이었으며 이 경험이 나를 도와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심 대사’는 1975년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와 2년 동안 충남 예산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귀국한 뒤에도 이 학교 교사들과 꾸준히 연락해 왔고, 부임 며칠 뒤에는 여교사 3명과 가족들을 대사관저로 초청했다. 그게 부임 후 첫 외부 행사였다.
대사는 6일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임성준) 초청으로 다시 방한하는 평화봉사단원 42명을 대사관저로 불러 10일 만찬을 한다. 8일과 9일에는 예산을 찾는 봉사단원과 동행해 수덕사도 방문할 계획이다.

지난 1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예방한 자리에서도 그는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한 경험, 그리고 한국의 변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 배석한 외교부 당국자는 “스티븐스 대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한국 사랑이 묻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부임한 뒤 한국을 배워 가며 외교 활동을 시작하는 대부분의 외교 사절과 달리 30년 전 낙후된 한국의 발전을 위해 젊음을 바쳤던 스티븐스 대사의 외교 행보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미국 대선이 끝나도 한·미 간에는 무겁고 민감한 현안이 줄줄이 놓여 있다. 그러나 한국에 애정을 갖고 있는 미국 대사의 존재가 양국 관계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외교가의 기대다.
대사의 부임 이후 주한 미 대사관 내 분위기도 달라졌다고 한다. 지난달 24일 대사관 직원들과의 상견례에서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인을 만나면 되도록 한국말을 쓰고, 한국 음식을 많이 먹었으면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미 대사관에서 한국말이 유창한 외교관은 한국계인 조셉 윤 정무 참사관과 헨리 해거드 1등 서기관, 비자 담당 영사과 직원 몇 명 정도다.

대사관 관계자는 “새로 부임한 보스(boss)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국민 속으로 파고드는 외교를 펼치자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대사관 직원들이 심리적 압박을 받는 게 느껴진다”면서 “많은 직원이 한국말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엘리트 사회의 도덕적 힘
스티븐스 대사만 평화봉사단 출신의 미국 외교관은 아니다. 봉사단 홈페이지에 소개된 대사급 인사만 20여 명이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차관보는 70년대 중반 세네갈에서 근무했고, 알제리·인도네시아·케냐·시에라리온·파라과이·남아공·카메룬·온두라스·에리트레아·가봉·파푸아뉴기니 주재 현직 미국 대사 모두 아시아와 아프리카·중동에서 젊은 시절 평화봉사단원으로 땀을 흘린 외교관들이다.

상·하원에도 봉사단 출신이 6명 있다. 크리스토퍼 도드(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짐 도일 위스콘신 주지사는 부인 제시카와 함께 튀니지에서 봉사했다. 지난해 미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이끌어 낸 마이크 혼다(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은 엘살바도르에서 활동했다. 같은 주의 샘 파 하원의원은 콜롬비아에서, 제임스 월시(뉴욕주) 하원의원은 네팔에서 평화봉사단으로 일했다.

재계에서는 엑손 모빌사의 선임 부회장인 새뮤얼 길레스피 3세, 루커스 필름 회장인 고든 래들리, 워너 브러더스 그룹의 도널드 푸트리머스 부회장도 평화봉사단 출신이다. 캐럴 벨라미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사무총장도 60년대 과테말라에서 활동했다. 빈곤퇴치 등 국제사회 이슈를 해결하려는 비정부기구(NGO)에도 많이 진출해 있다.

한국과의 인연도 두텁다. 북핵 6자회담 미국 대표로 낯익은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바우처 차관보와 비슷한 시기 카메룬에서 봉사를 했다. 그는 2004년 한국 대사를 했는데 한국 네티즌과 인터넷 채팅을 하며 다른 대사들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개인 성향도 작용했겠지만 평화봉사단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주한 대사관 공사를 지낸 리처드 크리스텐슨 국무부 자문역은 67년 목포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레그 앵글 토고 대사는 81년 평화봉사단이 한국 활동을 마칠 때까지 봉사했다.

시카고 대학의 한반도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와 우드로 윌슨 센터의 마크 모어 아시아 프로그램 디렉터, 하버드 대학 미술관 아시아 담당 큐레이터인 로버트 모우리, 카트 에커트 하버드대 한국학 교수, 에드워드 베이커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부소장, 로럴 켄달 컬럼비아대 인류학 교수 등은 한국에서 활동했던 학계 인사들이다. 모두 미국 내 적극적 지한파다.

“그들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 그들 속에서 사랑과 겸손을 배웠다.” 봉사단 출신들이 밝히는 한결같은 소감이다. 다른 문화권의 개발 도상국 주민들과 함께한 경험이 미 지도층의 도덕적 힘이 된 것이다. 평화봉사단은 그처럼 미국 외교의 힘이자, 미국 엘리트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자양분이다.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지 물어라”
60년 10월 14일 새벽 2시. 미시간주 앤 아버의 미시간 대학 학생회관 앞에 학생 1만 명이 모였다. 미 대선 민주당 후보인 존 F 케네디 상원의원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다. 케네디는 잠을 자려고 대학 구내로 들어왔지만 학생들을 보자 학생회관 계단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친애하는 미국민이여. 국가가 그대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 묻지 말고 나라를 위해 그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라.… 젊은이들이여 개발도상국에 나가 봉사활동을 통해 세계 평화를 이룩하자.” 학생들은 환호했다.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 리처드 닉슨은 “징병 기피자의 은신처를 제공한다”며 비난했다. 제3세계 국가들은 “‘추한 미국, 양키 제국주의’ 이미지를 불식하려는 의도”라고 깎아내렸다. 그러나 당선된 케네디는 취임사에서 이를 다시 강조했고 곧 국무부 내에 평화봉사단이 설립됐다.

평화봉사단은 닉슨 대통령 때 조직이 축소됐다가 적극 옹호파인 지미 카터 대통령 때 독립 연방기구가 돼 기틀을 다졌다. 카터 대통령의 어머니도 봉사단의 간호사로 활동했다. 61년 이후 139개국에서 19만 명이 활동했다. 현재는 74개국에서 8079명의 봉사단원이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예방과 식수 보급, 정보기술(IT) 전수 등을 하고 있다. 봉사단의 95% 이상이 대졸 이상 학력이며, 11%는 대학원생 또는 석사학위 이상 소유자다.

한국의 고난기를 함께한 3200명
66년 케빈 오도넬 한국 사무소장이 200여 봉사단원과 함께 한국에 도착한 이래 81년까지 3200여 명의 봉사단원이 한국의 개발 시기를 함께 겪었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기생충을 퇴치하고, 농업 기술을 전수했다. 돌아가서는 ‘한국의 친구들 (Friends of Korea)’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지역별로 1년에 수차례 만나 ‘갑돌이와 갑순이’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 등을 부르며 한국에서의 추억을 나누고 있다. 이번에 한국을 찾는 원로 봉사단원에는 아흔이 넘은 오도넬,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영어를 가르친 찰스 골드버그, 세브란스와 서울대 병원의 언어교정센터 설립에 기여한 글로리아 마모킨 등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미국의 평화봉사단을 벤치마킹해 90년 국제협력단(KOICA)을 창설했다. 현재 KOICA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40여 개국에 1500명의 봉사단원을 파견하고 있다. 20대의 젊음을 한국에서 보내고 60~70 고개를 훌쩍 넘은 노장 봉사단원들은 6일 오후 성남의 KOICA 본부를 방문, 해외 파견을 앞두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만나 노하우를 전수할 계획이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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