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프리즘>이문세와'별밤'-청소년의 말벗 별밤지기1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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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문세와 『별이 빛나는 밤에』의 첫 인연은 85년 4월8일 시작됐다.올해로 꼭 11년째다.
『별밤』이 첫 전파를 탄 때가 69년 4월.그러니까 이문세는『별밤』이 27세의 청년으로 성장하는동안 3분의1이상의 세월을이 프로그램과 고락을 함께 한 셈이다.
이문세란 이름 석자가 이젠 『별밤』과 동일시될 정도로 청소년들 사이엔 「상징언어」가 된지 오래다.자연스레 「별밤지기」란 애칭도 따라 붙었다.
이문세는 「별밤지기」 11년을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을 맡은 기분으로 지냈다』며 『이보다 더 진한 열애는 없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가장 정열적으로 활동할 인생의 황금기를 「별밤」과 함께 했다.당연히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별밤」을 통해 청소년을 이해했고,방송을 알았고,문화를 배웠다.』 사실 이문세는 여러차례「도중하차」를 고려한 적이 있다.그러나 번번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물론 타의에 의해서였다.
방송사는 인기하락을 걱정했고,「별밤 가족들」은 그와의 이별을두려워했다.그의 도중하차 소문이 전해지자 어느 여고에선 3백여명의 학생이 탄원서를 모아 소포로 보내 오기도 했다.
『오래 하다보면 권태를 느낄 때도 있다.청소년들을 잘 이해한다고 하지만 나이를 속일 수는 없다.자칫 세대차에서 오는 오해는 없는지 자문하다보면 불쑥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회의속에서도 그를 11년동안 단단히 묶었던 끈은 오직 하나.바로 사명감이라고 단언한다.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사명감이 오기로 발동해 그를 다시 마이크 앞으로 몰아세운다고 한다.
『한때 라디오 청소년프로그램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기성세대도 많았다.공부 안하고 딴짓 한다는 이유에서였다.그러나 어찌보면 청소년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이다.「별밤」은그들의 빈공간을 채워주는 친구다.』 『별밤』의 영향력(?)을 과시할 때 그가 곧잘 얘기하는 에피소드가 있다.각계 유명인을 초대해 대담을 나누는 코너가 있었는데 한 장관이 출연섭외를 거절하더란다.그가 집에 가서 딸에게 이 경위를 설명하자 딸이 『얼마나 인기있는■프로인 데 그러셨냐』며 매우 크게 화를 냈다.
결국 딸의 성화에 밀려 당장 출연섭외가 이뤄진 것은 당연했다.
이문세는 올봄 각 방송사 라디오의 청취율조사결과를 보고 놀랐다.『별밤』이 단연 청취율 최고여서가 아니라 청취자들의 상당수가 대학생.직장인들이란 사실 때문이었다.
이종환-고영수-조영남-이필원-오혜령-서세원등 내로라하는 MC들의 뒤를 이어 「별밤지기」가 된 이문세.자신이 맡는 동안에도12명의 PD가 바뀌었다며 세월무상을 실감하고 있는 그는 『청소년들의 말벗이자 심야의 동반자로 영원히 남고 싶다』고 말했다.이씨는 「별밤지기」10년 공로로 지난해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글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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