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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詩歌' 밑그림 그려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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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앙일보가 '천년 시가(詩歌)' 시조 문학의 중흥을 위해 제정, 운영해 온 중앙시조대상과 중앙시조 지상백일장의 역대 수상작품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시조시인 홍성란씨가 엮은 '중앙시조대상 수상작품집'(책만드는집)에는 1982년 시작된 중앙시조대상 대상.신인상 수상작품 22편씩과 심사평, 90년 시작한 중앙시조 지상백일장 연말장원 당선작과 심사평, 홍씨의 작품 해설 등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중앙시조대상 대상은 등단 15년 이상의 시인들, 신인상은 등단 10년 이하의 시인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작품 중 가장 우수한 한 편에 돌아가는 작품상이다. 중앙시조 지상백일장 연말장원은 1차 관문인 월 시조백일장을 통과한 입선자들에게서 연말에 새 작품을 받아 최고작을 가리는 신인 등단 제도다.

'…수상작품집'에는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경계에 섰던 육당 최남선과 이병기.이희승.조운.이은상 등에 의해 계승된 현대시조 정신, 80년대 이후 시조시인들의 시작(詩作) 경향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조단 새 식구 지망생들의 작품 수준 변화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희승.이태극.정완영씨 등 '쟁쟁한' 시인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1회 중앙시조대상은 대표작 '백자부(白磁賦)'로 유명한 김상옥씨의 '삼련시 2수'를 대상작으로 뽑았다.

2회 중앙시조대상은 무려 6시간에 걸쳐 격론을 벌였지만 대상작을 정하지 못하고 대신 유재영씨의 '월포리 산조'와 이우걸씨의 '비'를 신인상 공동 수상작품으로 뽑았다. 그만큼 최고의 작품을 뽑는 중앙시조대상의 심사과정은 치열하고 엄격했다.

이후 대상은 정완영.이태극.박재삼.장순하씨 등을 거쳐 90년대 들어 김제현.송선영.서벌.박시교씨 등에게 돌아갔다.

93년 12회 중앙시조대상에서는 윤금초씨의 '주몽의 하늘'과 박권숙씨의 '신기산 기슭 2' 등 사설시조가 나란히 대상.신인상 수상작으로 뽑히기도 했다.

중앙시조대상은 제정 때부터 시조단의 큰 관심을 모았다. 이희승씨 등이 작성한 1회 심사평은 "시조의 국민시로서의 창달이 시급하고도 시의적임을 절감하고 있는 작금, 중앙일보가…시조상 제도를 만들어 시상을 실시하게 된 것은 국민 모두가 격려와 찬사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으로 믿는다"고 평가했다.

이경철 문예중앙 주간은 책의 발문에서 "시조 시인이나 문학도들에게 우리 시조의 수준을 가늠하며 자신의 창작을 독려하고 연마할 수 있는 텍스트로도 읽힌다"고 썼다.

신준봉 기자

*** 시조시인 1000명 시대 질적인 성장 뒤따라야

여말(麗末).선초(鮮初)로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시조가 향가.고려가요.가사(歌辭) 등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다른 장르들과 달리 면면히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 온 덕분이다. 1920년대 이병기.이은상 등 국민문학파가 주도했던 시조부흥 운동, 50년대 제기된 전통단절론에 대한 반발 등이 대표적이다. "봄처녀 제오시네/새풀옷을 입으셨네"로 시작하는 '봄처녀' 등 이은상의 수많은 시조는 가곡으로 만들어져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이호우의 시조 '살구꽃 핀 마을'("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등은 교과서에 실려 애송됐다.

21세기에 접어든 시조는 이제 다시 질적인 도약을 모색할 시점을 맞았다.

그동안 외형적으로는 급성장했다. 2002년 한 시조 전문 문예지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시조시인은 1000명을 넘었다. 60년대 초반 시조시인협회의 회원 수가 30명 선, 80년대 중반 300명 선이었던 데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시조 전문지만 해도 '열린 시학''시조문학''현대시조''시조시학''시조생활''시조 21''나래시조' 등 10종 가까이 되고, 전남 해남군에서 운영하는 '고산문학대상'과 전북 익산시가 운영하는 '가람시조문학상' 등 지자체가 시조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포상제도도 활성화된 편이다.

문제는 내실이다. 이지엽 경기대 교수는 "일부 문예지에서 자수만 맞출 줄 알면 등단시키는 등 무더기로 시조시인을 배출하다 보니 시인들의 수준이 고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시조시인 박시교씨는 "시조시인 1000명 중 작품다운 작품을 부지런히 쓰는 시인은 40~50명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시조가 사라지고 있고, 예술원 회원에 시조시인이 없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반의 관심이 옅어지다 보니 대형 서점에서조차 시조집을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시조시인들은 "그래도 최근 시조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젊은층이 늘고 있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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