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오클리 지음, 이종삼 옮김
살림, 560쪽, 2만5000원
‘인간의 얼굴을 하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잔악한 범죄행위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뱉는 말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수수께끼같은 대상이다. 이런 사람들이 멀리 있는 것만도 아니다. 다른 동료들 앞에서 폭언으로 모욕하고 망신을 주는 직장 상사, 악의적인 험담을 퍼뜨리는 동료나 이웃, 남의 애인 혹은 배우자를 가로채는 사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파렴치한 등은 주변에서도 어렵지않게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인류는 ‘악인의 역사’를 끊임없이 목도하면서 가끔 천성을 의심하면서도 이를 주로 개인의 윤리 문제로만 여겨왔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을 쓴 바버라 오클리 박사(미 오클랜드대 시스템공학 교수)는 참으로 집요했다. 그녀는 “왜 사악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왜 그들은 때때로 성공하는가?”라는 질문에 천착했다. 해부학, 유전학, 정신병학, 심리학, 신경과학 등의 연구 논문을 탐독하며 인간의 사악성, 즉 못된 기질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데 도전했다.
저자는 뇌과학, 심리학 분야의 최신 연구를 개괄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실제 인물들의 사악성에 대한 사례분석도 곁들였다. 마오쩌둥, 히틀러, 스탈린에 이어 분식회계로 2001년 파산한 에너지 회사 엔론의 CFO 앤디 페스토, 패리스 힐튼의 외할머지 빅 캐시, 마사 스튜어트 등이 그 도마에 올랐다. 이를테면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인종청소를 벌인 세르비아 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1941~2006)에게서 경계선 인격 장애의 다양한 징후를 조목조목 짚어냈는가하면, 마오쩌둥에게선 경계선 인경 장애 징후를 넘어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징후까지 찾아냈다.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전체적인 패턴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독특한 분야인 시스템공학 교수인 저자는 이 책을 쓰는데 자신의 전공을 십분 살렸다. 여러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논의를 전개하는 솜씨는 현란하다 싶을 정도다.인간의 선악 문제를 철학과 심리학의 틀에서 이해하는데 갑갑함을 느꼈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인간 탐구서’가 될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본의아니게(?) 소설처럼 펼쳐지는 저자의 음울하고도 독특한 개인사까지 알게 된다는 점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질러온 친언니 캐롤린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 때문에 이 분야 연구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한 이해는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함으로써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연민의 정을 느꼈다”고 답했다. 언니 자신이 통제할 수 없었던 일부 신경학적인 그리고 유전적인 기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의학박사 짐 펠프스는 추천의 글에서 “인간 대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선량하다”며 “그러나 나쁜 행동에 대한 이해가 깊을 수록 우리는 그 문제를 더 잘 다루게 법”이라고 덧붙였다. 원제 『Evil Genes』.
글=이은주 기자
일러스트=이정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