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高費用으로부터의 엑서더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수행(修行)하는데 마(魔)없기를 바라지 마라.마 없이는 서원(誓願)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마군(魔軍)으로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하셨나니라.』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 있는 교훈이다.
한국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이번 불황은 새로운 경제인이 되고,새로운 경제시스템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국인이 열성적 수행을 시작하면 그 벗이 돼주려고 먼 지옥에서 너무 늦지 않게 달려온 천사같은 마군이다.
수행의 반대말은 요행(僥倖)이다.경기부양책은 요행을 좀 연장시켜보자는 어리석은 화장(化粧)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경제에 지금 필요한 것은 화장이 아니라 치료다.화장은 얼굴의 어두워진 혈색을 감춤으로써 스스로 속아 치료의 때를 놓치게 한다.우리가 받아야 하는 치료는 자신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수행을 통한 치료다.
우리 경제의 병은 누구나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한마디로 말해 고비용(高費用)이라는 거품이 차 생긴 병이다.생산품의 품질과 생산성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땅값.금융비용.인건비.
물류비(物流費).정부규제비용,이 다섯가지가 우리와 경쟁상대가 되고 있는 선진국들에 비해 각각 2배 내지 10배나 비싸다.경기부양책을 쓰다가는 이런 연결형 고비용 구조는 고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점점 악화하고 만다.지금 경기를 부양한다는 것은 마치 비만성 당뇨병 환자가 목이 너무 마르다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자꾸 먹어대는 것에나 비교할 일일 것이다.
일본경제가 지난 3년간 거의 0% 성장에 묶여 있었던 것은 고지가(高地價)거품이 꺼지는 여파로 생긴 불황 때문이었다.기업과 은행은 그때까지 일본경제의 성장기관차 노릇을 해오던 설비투자를 뒷받침할 힘을 고지가 거품이 빠지면서 잃어버 렸던 것이다. 일본의 땅값 거품이나 그 붕괴과정은 일본기업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오히려 국제경쟁력은 더 강해져 무역수지 흑자는 더 늘어났고,그 바람에 엔화는 절상을 거듭했다.다시 말해 일본의 땅값 거품은 고비용의 악순환을 만들 기 전에 단독형 상태로 부풀어 있다가 꺼졌다고 할 수 있다.품질과 생산성 향상 속도가 고지가에 따른 비용파급 속도보다 빨랐던데다 일본경제는 세계시장에서 많은 품목을 기술과 품질에서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올해 들어 경기가 회복되면 서 오히려 흑자는 둔화되고 엔은 절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에서 말한 다섯가지 고가(高價)가 그대로 고비용으로 구조화되었고,뿐만 아니라 한 고비용이 다른 고비용을 불러일으키는 상호작용 악순환 나선(螺旋)이 돌아가고 있다.이런고비용 구조 때문에 우리 경제는 이미 절망적 비 명을 질러온지오래다.기업의 대량 도산(倒産)과 피란(避亂)성 짙은 해외진출이 그것이다.
지난 4개월 동안은 어음부도율이 다소 진정되는 국면에 들어갔는데,죽을 기업은 다 죽어 그렇다는 해석이 나올 정도였다.그러다 요즘 다시 부도율이 급하게 올라가고 있다.가위 단말마(斷末魔)적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고비용 구조가 실제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부문이 무역이다.수출을 하자니 어느 시장을 향해 선적되는 것이든 값이 너무 비싸 맞지 않고,수입품은 어디에서 들여오든 값이 싸거나 품질이 좋다는 만연병학적(蔓延病學的:Epid emiological)사태가 정착했다.그러다 무역수지 악화 정도가 아니라드디어 수출 절대액이 전년에 비해 줄어드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모든 고비용 요소가 단일한 몸덩어리로 체화(體化)돼 나타난가공(可恐)스러운 현상이다.
이것을 『마침 세계시장에서 반도체 경기가 계속 나빠져서』라며악운 탓에만 돌리고 펀더멘틀(기본)은 그저 외면만 하는 통상산업부,단기적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겠다는 점까지는 좋지만 그 다음엔 무책(無策)인 재정경제원등 정부부처에 맡겨 고칠 수는 없다.정작 고비용 구조를 해결해야 할 부처가 아무 것도 못하고 있으니 『나요,나!』하며 때아니게 뉴스를 흔들며 나온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였다.지금은 공정보다 효율이 화급한 때다.때가 아닌말은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대사 (臺辭)가 되고 만다.
어쩌면 4,5년이 걸릴지도 모를 초저성장(超低成長)이란 이름의 마군을 지팡이 삼아서만 우리 경제는 고비용으로부터의 탈출이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이 지극히 괴로울 엑서더스를 향도할 모세는 지금 어디 있는가.
(논설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