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유럽의 LHC와 중국의 선저우 7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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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한 달 동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2개의 커다란 과학적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9월 10일 스위스 제네바 부근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대형강입자가속기(LHC: Large Hadron Collider)가 성공적으로 가동을 시작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27일 중국 선저우(神舟) 7호의 우주인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우주 유영에 성공한 것이다.

이 두 사건은 소위 거대과학(big science)의 대표적 예로, 국가가 특정한 과학기술 사업에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얻은 성과다. 유럽의 20개 국가가 공동 운영하는 소립자물리학 연구소인 CERN은 양성자 충돌실험 가속기인 LHC를 건설하는 데 15년 동안 10조원 이상 투입했고 앞으로 우주 최초의 대폭발(big bang) 당시의 상황을 실험적으로 재현,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 요소와 우주 생성의 비밀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국이 선저우 7호에 투입한 총예산은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알기 어렵지만, 우주복 한 벌이 50억원에 달하는 등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면 세계 각국의 정부는 무엇 때문에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국민의 일상생활과는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과학기술사업에 투자할까.

사실 우리가 우주 생성의 비밀을 몰라도 살아가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럽의 각국 정부는 LHC 사업에 우리나라 정부가 지난 15년간 전국 대학에 지원한 기초연구비 총액보다 많은 돈을 투자했다. 또한 중국 전역에 생중계된 선저우 7호 선장 자이즈강의 우주 유영에 투입된 막대한 돈 대신 아직도 빈곤 상태에서 허덕이는 수많은 중국인에게 직접 나눠줬으면 큰 인기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궁극적 대답은 “인간이 단순히 경제적인 동물만은 아니다”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우주의 근원에 대한 근본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축구팀이 국제대회에서 승리하면 공연히 어깨가 우쭐해지는 존재다. 자기가 낸 세금의 일부가 우주와 생명의 근원을 밝히는 문제에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다면 뿌듯함을 느끼고, 그런 고귀한 목적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을 보람있게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자기 나라가 우주선을 쏘아올릴 정도로 첨단 기술과 국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자부심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거대과학은 인류 공통의 문화에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국가의 위신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이를 통한 국가 위신과 품격의 상승은 실제로 자국 상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 프랑스 문화가 프랑스제 향수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질적인 이익을 따져보더라도 이 같은 세계 최첨단의 과학 연구는 종종 획기적인 신기술을 창출, 커다란 부가가치를 가져다준다.

일찍이 CERN은 과학자들 사이에 데이터통신을 원활히 할 목적으로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을 개발했고, 이 기술을 무상 공개해 오늘날 인터넷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또한 우주 기술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개발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외에도 우주의 극한 상황을 견디는 우주복 소재가 소방관의 방화복 제작에 쓰이는 등 여러 파생기술이 이용되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위상 증진과 첨단 원천기술의 확보를 위해 거대과학은 앞으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많은 첨단 연구에서 방사광가속기 등 거대장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거대과학 연구와 시설에는 막대한 투자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과학 연구를 위해 쓸 수 있는 제한된 자원 중 어느 정도를 거대과학에 투자해야 하느냐는 선진국에서도 항상 논란이 돼왔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동안 일부 거대과학 시설에의 투자 결정이 투명하지 못했던 점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 세계적인 추세대로 거대과학 시설에의 투자가 늘어나려면 우리나라에서도 그 결정 과정이 투명해서 과학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설득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LHC 실험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은 “실험의 의미를 과학자가 아니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라”는 주문을 받고 있다. 과학자들이 국민의 세금을 쓰는 한,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자연대학장·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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