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강지처 떠나보낸 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1호 24면

여섯 살 때 이웃에게 껌과 콜라를 팔아 돈벌이를 시작했고, 일곱 살 때엔 채권에 관한 책을 선물로 달라고 산타클로스에게 기도했다. 열 살 생일 기념으로 소풍 간 곳은 뉴욕 증권거래소였다. 그러고는 35세까지 백만장자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워런 버핏 공식 전기 이번 주 출간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78·사진)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전기 『스노볼:워런 버핏과 인생경영(The Snowball:Warren Buffett and the Business of Life)』에 소개된 그의 어린 시절 얘기다. 29일 출간되는 이 책은 이제까지 자서전을 내지 않은 버핏의 내밀한 개인사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버핏이 직접 모건스탠리의 보험 담당 애널리스트 출신인 앨리스 슈뢰더를 작가로 골라 집필하게 했다. 저자는 5년간 300시간의 인터뷰를 비롯해 2000시간을 버핏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책 제목은 “삶은 스노볼(눈덩이) 같다. 중요한 것은 (잘 뭉쳐지는) 습기 머금은 눈과 진짜 긴 언덕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버핏의 유명한 어록에서 딴 것이다. 인생에서 돈이나 지식을 어떻게 쌓아 가야 하는지 되새기게 해 주는 말이다.

책에 따르면 버핏의 성공 비결은 한마디로 ‘집중하라(Focus)’로 요약된다. “전념해야 탁월한 실적을 낸다(Intensity is the price of excellence)”는 것이다. 청년 시절 버핏은 무디스 투자 매뉴얼을 펴 놓고 온종일 골똘히 생각하거나 통계치들과 씨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난 50년간 시장 수익률을 웃도는 실적을 올린 버핏의 투자 기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투자의 내재가치를 따지고 위험을 제어하되 레버리지를 높여 끌어 모은 돈으로는 투자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지만 실제로 이행하기는 쉽지 않은 말이다.

하버드대와의 악연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버핏은 19세 때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에 들어가려고 했다. 주식에 워낙 관심이 많았고 그쪽으로 내공도 쌓아 왔기 때문에 청년 버핏은 입학 관문을 넘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그러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이유인즉슨 하버드는 신동이 아니라 리더를 원했고, 자신만만해하는 버핏에게서 ‘불안한 내면’을 읽었다는 것이다. 버핏은 하버드 낙방을 ‘내 인생의 중추적 사건’으로 꼽았다. 그 후 진로를 컬럼비아대로 바꾼 버핏은 많은 투자자가 모델로 삼는 ‘리더’로 성장했다.

버핏은 여러 명의 멘토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선 그의 컬럼비아대 은사인 석학 벤 그레이엄을 들 수 있다. 유명한 주식 투자 가이드 『똑똑한 투자자』의 저자인 그레이엄 교수는 “시장은 네 주인이 아니라 종”이라고 가르쳤다. 매일 주식시장은 오르내림을 거듭하는데 이 과정에서 싸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가르침이었다.

그의 첫 아내로 남과 어울리는 법을 끊임없이 조언했던 수전도 버핏의 멘토로 꼽혔다. 버핏은 소심한 성격 탓에 인간관계의 폭이 넓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 발행인이던 고(故) 캐서린 그레이엄도 그의 멘토였다. 그레이엄은 버핏을 거물이 몰리는 사교모임에 소개했고, 버핏은 워싱턴 포스트의 주요 투자자이자 그레이엄의 ‘경영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

이 책은 베어스턴스의 몰락 등 최근 얘기도 다루고 있다. 미 금융위기에 대한 버핏의 진단은 우울하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고, 장기적이고 심각한(long and deep) 경기침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버핏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책 내용엔 이미 알려진 얘기가 많다. 하지만 버핏의 인간적인 결점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버핏은 저자에게 ‘내 증언이 다른 사람 말과 다르면 나한테 불리한 쪽을 채택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은 남편과 아버지로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버핏의 그림자도 묘사하고 있다. 버핏은 20대 초반 수전과 결혼했지만 일에 파묻혀 사느라 별로 가정적이지 못했다. 세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수전이 ‘싱글맘’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수전은 재산을 800만~1000만 달러까지 불리면 남편이 일을 좀 줄이고 가족에게 신경 쓸 것으로 기대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자녀를 다 키운 뒤 1977년 수전은 또 다른 사랑을 찾아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버핏과의 염문에 휩싸였던 캐서린 그레이엄도 버핏 부부를 갈라놓은 하나의 원인이 됐다.

버핏은 조강지처인 수전을 그냥 떠나보낸 것을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고 술회했다. 자기 옷 하나 스스로 챙겨 입지 못하는 버핏을 위해 수전은 친구인 애스트리드 멩크스에게 남편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 인연으로 멩크스는 자연스럽게 수전을 대신해 버핏의 반려자가 됐다. 수전이 2004년 사망할 때까지 27년간 버핏과 수전은 파탄 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이혼하지 않고 가끔 왕래하면서 지냈다. 버핏은 수전이 사망한 뒤인 2006년에야 멩크스와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