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부모·형제는 버리고 더 많은 부모·형제를 만난 사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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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31면

각현 스님을 처음 뵌 것은 17년 전인 1991년 복지부 노인복지과 창설 멤버로 참여했을 때다. 이 무렵 스님께서는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을 갓 설립해 용인에 처음으로 노인요양원을 만들었다.

내가 본 각현 스님

각현 스님은 여러 가지 모습이다. 큰스님이기 전에 숭고한 사랑과 인간애를 몸소 실천하는 이 사회의 살아 있는 지도자이자 스승이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구제하는 헌신적 사회복지가이자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사회적 효자’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스님의 삶의 뿌리를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큰 원력(願力)’에서 찾고자 한다. 그의 소망은 올 4월에 펴낸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나의 부모·형제는 버렸지만 더 많은 이웃의 부모·형제를 만났으며, 산사의 솔바람 소리는 뒤로 했지만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현장의 목소리가 정겹고…. 얽히고설키고 사는 맛으로 위안하려 하니….”

그가 노인복지에 원력을 세운 것은 80년대 초, 홍콩 사찰의 적극적인 사회구호활동에서 받은 큰 감명을 가슴에 품은 채 홍콩 홍법원장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다. 수도자의 길과 중생 구제란 양 갈래의 길목에서 스님은 노인복지·사회복지활동을 선택했다.

현재 7개의 노인요양원 및 요양병원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 1500여 명을 봉양하며, 23개 복지관 등에서 하루 평균 7000여 명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9개의 경로식당에서 하루 2500여 노인에게 무료급식을 나눠 주고 있다.

스님은 89년 용인노인요양원 설치 후 2002년 안성노인요양원 완공까지 13년간 서울 송파의 법인사무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잔 것으로 알려졌고, 해외출장이나 지방출장 등으로 아무리 밤늦게 귀가하는 경우라도 반드시 시설에 들러 어르신을 살피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신 몸은 돌보지 않아 수년 전부터 하나 둘씩 빠진 이를 이제 임플란트로 대신한 채 ‘봉사대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 3000만원 이외의 각종 강연료 등을 전액 법인에 기부하며, 3년 전부터는 베트남 빈곤 학생 100명에게 장학금 5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일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은 이웃과 사회를 향한 한없는 자비심이다. 부처님을 모시듯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는 마음이다. 스님은 이 자비심을 종종 불경 말씀으로 풀곤 한다. “병자를 돌봐 주는 사람은 곧 나(부처님)를 돌보는 것이요,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은 곧 나를 간호하는 것이다.”(『증일아함경』) 제2, 제3의 각현 스님이 나오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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