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동 해장국집 골목 빌딩가로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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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재개발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청진동 해장국집 골목. 오른쪽은 재개발 후 현대식으로 새 단장하게 되는 피맛골 조감도. [김태성 기자]


25일 오후 서울 청진동 해장국집 골목. 대표적인 해장국집이던 청진옥 건물은 재건축 공사를 앞두고 철제 펜스와 가림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펜스에는 이 일대의 재개발로 인해 7월 말까지 영업한 후 인근 르메이에르 종로타워로 이전해갔다는 안내 포스터만 덩그러니 붙어 있다. 해장국 골목의 상징과도 같던 이곳이 사라져버리자 골목 전체가 썰렁한 느낌이다. 골목 건너편에서 종로구청 쪽으로 조금 올라가 자리 잡은 또 다른 해장국집 홍진옥. 점심식사 시간이 지났기 때문인지 가게 안은 한산한 편이었다. 주인 이봉석(73)씨와 건물주 홍순호(82)씨 등 몇몇 사람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홍씨는 “건물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면 팔아 치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건물이 팔리면 해장국집은 그만둘 생각이야. 이 나이에 어디 다른 데로 옮겨 가서 장사하겠소”라고 말했다.

청진동 해장국 골목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골목을 포함하는 청진동 일대가 서울시의 도시환경정비사업에 따라 재개발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4일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어 해장국 골목 일부가 포함되는 정비계획안을 가결했다”고 25일 밝혔다. 계획안에 따르면 교보빌딩 뒤편의 청진구역 2·3 지구 등 3개 지구 33만2000㎡의 부지 위에 23·24층 규모의 업무·판매시설용 빌딩, 업무·근린생활시설 4채가 들어선다. 시는 청진옥이 포함돼 있는 12∼16지구의 경우 해장국 골목을 따라 30∼40m 길이의 단층 건물을 짓도록 해 특유의 분위기를 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빨라도 내후년에나 완공되는 새 건물로 한번 떠났던 해장국집들이 다시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어떻게 재개발되나=해장국 골목과 제일은행 본점 사이의 12∼16지구는 1만4228㎡의 부지에 24층 높이 쌍둥이 빌딩(연면적 17만5536㎡)이 들어선다. 부지의 남쪽, 종로와 피맛길 사이에는 3층 높이의 상가 건물을 짓도록 하되 상가 내 각 점포의 크기를 폭 3.6∼4.5m로 제한해 작은 규모의 음식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현재의 피맛골 분위기를 이어나가도록 할 계획이다. 광화문 KT 건물 뒤편의 1지구에는 4243.7㎡의 부지에 23층 높이의 업무·근린생활시설(연면적 5만1413㎡)이 들어선다. 2·3지구에는 8910.4㎡ 부지에 24층 높이 업무·판매시설용 빌딩(연면적 10만5230㎡)이 들어선다. 2·3지구 역시 종로와 맞닿은 피맛골 구역은 건물 높이(3~5층)와 점포 폭을 제한해 피맛골 분위기를 살릴 계획이다.

이들 지구는 앞으로 시 건축심의를 거쳐 빠르면 내년 4월께 착공에 들어간다. 종로구청은 “GS건설이 사업 시행자인 1지구의 경우 토지 매입을 100% 완료하는 등 재개발에 걸림돌이 없다”고 밝혔다. 공사 기간은 2년쯤으로 예상된다. 홍진옥은 청진구역 한가운데 조성되는 공원 부지에 포함된다. 종로구청은 “홍진옥 부지를 포함한 8지구의 토지 매입도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확한 시기를 못 박을 수는 없지만 수년 내에 재개발된다는 것이다.

신준봉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청진동 해장국집 골목=한국전쟁 직후 일대가 여관촌으로 바뀌면서 해장국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1970년대가 전성기로, 한때 30곳 가까운 업소가 성업했다. 오전 4시 통금이 풀리자마자 영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새벽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나 밤새워 통음한 술꾼들에게 인기였다. 82년 통금 해제의 영향으로 쇠퇴하기 시작해 재개발이 거론된 4, 5년 전부터 해장국집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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