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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은 역사적 전환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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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제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 가지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다. 2008년 8월 8일이 새로운 세계 질서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두 가지 사건이 국제적인 일로 부상했다.

첫 번째 사건은 베이징 올림픽 개막이었다. 이는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최상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스포츠와 경제적·기술적 성공을 단언하기 위해 세계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했다. 두 번째 사건은 그루지야와 러시아 간에 시작된 작은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또한 서구세계를 향해 냉엄할 정도로 러시아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려 했다.

그렇다면 2008년 8월 8일은 소련이 무너진 후 도래한 유일 강대국 미국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날이 될 것인가? 미국 혼자서 다른 나라의 의견은 고려하지 않은 채, 세상사의 흐름을 결정할 수 있는 이러한 국제 질서가 이제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성급한 판단이다.

미국은 전략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기술적·경제적·문화적 차원에서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남아 있다. 각 분야에서 미국은 러시아·중국보다 한참 앞서 있다. 하지만 미국은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는 초강대국인 척할 수는 없게 됐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늪에 빠졌다. 경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게다가 지구촌에서 미국의 인기는 시들해지고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점점 약해지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긴 하지만 세계의 패권까지 쥐고 있는 건 아니다. 미국이 국제사회는 안중에도 없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정도로 유일 강대국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면, 지금 미국은 이러한 망상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세계가 유일 강대국 세상으로 정의될 수도 없다. 우리는 지금 권력의 형태가 다양화된 글로벌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강대국이건 아니건 간에 한 개별국가가 게임의 법칙을 혼자 만들 수는 없다. 게다가 미국의 두 대통령 후보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미국이 다자주의를 더 잘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2008년 8월 8일이 역사적인 전환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될 것이다. 러시아도 중국도 이날 갑자기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아니다. 차라리 변화하는 지정학적 균형의 전개 과정상 한 걸음 나아간 것이라 보는 편이 옳다. 올림픽 기간 중 중국이 눈에 띄는 존재였던 점은 분명하지만 중국의 부상은 1978년 개혁·개방과 함께 시작됐다. 러시아도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국가 권위의 회복과 경제 발전, 그리고 세계 무대로의 복귀가 꾸준히 이뤄져 왔다.

사실, 세계의 다극화는 진행 중인 과정이라서 몇 월 며칠부터 시작됐다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가 없다. 모든 변화가 그렇듯 이것 역시 몇 개의 단계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어느 단계가 되기 전까지는 그것이 모두 다 언제 실제로 시작됐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축소된 미국의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중국이나 러시아 외에 브라질·인도와 같은 다른 나라들이 부상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분석가들은 이따금씩 사물을 단순화하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거창한 역사에 결부시키고, 단순 변화를 혁명에, 일의 자연스러운 전개 과정을 역사적 변화로 연결하는 경향이 종종 있다.

모든 점을 고려할 때, 2008년 8월 8일은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경향을 재확인한 것이라 보는 편이 차라리 맞을 것이다.

파스칼 보니파스 프랑스 국제관계 전략문제연구소장

정리=박경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