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이자카야의 즐거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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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30분. 일을 마친 직장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자리는 잠깐 사이에 꽉 찼다. 서울 이태원의 문타로.

요즘 서울 밤거리, 눈이 부십니다. 이자카야(일본 선술집)의 빨간 등도 거기에 한몫하지요. 이자카야가 서울에 등장한 것은 10여 년 전입니다. 이태원이나 명동 등 몇몇 곳에서 한국에 사는 일본인이나 외국관광객을 맞던 집들입니다. 그런 이자카야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 이제는 웬만한 골목 안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테이블 대여섯 개짜리부터 작은 강당만 한 곳까지 매장의 크기만큼이나 분위기도 각각입니다. 이자카야 팬들은 말합니다. 거기엔 뭔가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요.

맛 전문가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대체 이자카야에 왜 가는지를. 또 들어봤습니다. 사케가 어떤 술인지,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를. 그리고 돌아봤습니다. 서울의 괜찮은 이자카야들 말입니다.

글=백혜선· 유지상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전문가 3인의 "나는 이래서 간다”

맛난 요리 멋진 술

김범수

일본에서는 스시나 가이세키 같은 정통 일본요리를 제외한, 술을 마실 수 있는 가게들을 이자카야라 부른다. ‘부담 없이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선술집’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질 낮은 음식, 값 싼 술집의 개념이 아니다. 맛난 음식과 좋은 술을 합리적인 가격에 먹고 마실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최근 이자카야의 수가 크게 늘고 있지만 ‘무늬만 이자카야’가 많다. 일식조리사의 공급이 없다 보니 맛보다 인테리어에 치중하고 있어서다. 과도하게 한식화한 일식, 냉동 음식을 그대로 데워 내놓는 곳도 꽤 있다. 그래도 꼼꼼히 찾아보면 괜찮은 집이 곳곳에 있다.

▶본명보다 ‘팻투바하’라는 필명이 더 유명한 블로거. ‘팻투바하의 음식, 여행, 와인 그리고 음악’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이동통신 업계에서 몸담고 있지만 맛난 음식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열정적인 식도락가다.

여자들의 수다 공간

박은영

2, 3차로 이어지는 우리의 술 문화는 생각해 볼 식습관이다. 반면 이자카야는 부담이 없다. 삼겹살·곱창집에서 소주를 마실 때와 달리 과음하거나 과식할 염려가 적다. 다음날 업무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 사케는 쓴맛이 적고 부드러워 자극적이지 않은 일본요리들과 잘 어울린다. 담배나 고기 냄새 없는 깔끔한 분위기에 이국적인 공간도 매력적이다. 양이 적어 입맛에 따라 다양하게 골라먹을 수 있어 특히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찾는 것 아닌가 싶다. 은은한 맛의 사케를 앞에 놓고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떠는 수다는 얼마나 맛있는가.

▶방송과 잡지 일을 하다 미국 유명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음식산업에 뛰어들었다. 주방장과 레스토랑 이야기를 다룬 『키친로망』의 저자로 현재 레스토랑 컨설팅을 하고 있다.

사케 있어 행복한 날

홍준성

몇 년간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사케에 빠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케를 맛보기는 쉽지 않다. 와인은 삼겹살집·밥집에도 팔릴 정도로 대중화됐지만, 사케는 이자카야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사케를 구한다 하더라도 적당한 안줏거리가 많지 않다. 우리 음식은 안주로 삼기에 맛이 너무 세다. 이렇다 보니 사케와 요리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이자카야를 찾게 된다. 물론 꼭 순한 맛과 궁합이 맞는 건 아니다. 오뎅·나베 같이 뜨거운 국물요리는 알코올 향이 강한 혼조조, 회나 두부 같이 담백한 요리는 준마이다이긴조 같은 부드러운 술이 어울린다. 궁합을 따져 마실 일이다.

▶사케에 대한 자격증인 기키사케시와 일본 소주 자격증인 쇼추어드바이저를 취득한 일본술 소믈리에. 일본 술에 대해서만큼은 할 말 많은 술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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