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다음 달 1일 내한공연 피아니스트 야블론스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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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 피터 야블론스키(37)는 추억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1993년 그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와 함께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타고난 리듬감과 폭발적인 타건은 젊음을 무기로 한 또 한 명의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극적인 계기는 95년 9월 열린 첫 내한 공연이었다.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지휘 정명훈)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연주하기로 한 무대였다. 문제는 서울의 교통 체증이었다. 오케스트라 단원 전체가 연주회 시작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했던 것이다.

“오케스트라가 서곡을 연주하기로 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저는 아직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한 시간 정도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다음 달 1일 열리는 독주회를 위해 내한한 야블론스키는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베토벤 소나타, 쇼팽 마주르카…. 머릿속에 있는 곡들을 다 끄집어내서 한 시간 동안 시간을 끌었죠.” 돌발 상황을 실력 발휘의 기회로 삼은 셈이다.

이 드라마틱한 첫 내한 후 그는 한국에 극성 팬을 거느리게 된다. “그로부터 2년 후 독주회를 위해 다시 한국에 왔어요. 그때 공연장에 몰린 팬들을 막기 위해 경찰까지 왔던 장면이 기억나요. CD에 사인도 밤 새도록 했고요.” 그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오빠 부대’를 창설시킨 원조 격 피아니스트다.

“특이해요. 아시아 국가들에서 유독 저를 ‘아이돌’처럼 대했어요. 올해로 일본에 20번, 한국에 8번째 연주 투어예요. 그런데 15년 동안 차츰차츰 열기가 식어가는 것을 느꼈죠.” 잘 생긴 외모와 인상적인 연주로 스타가 됐던 야블론스키는 “그 분위기에 휩쓸렸다면 자리를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중의 반응이 뜨거워 1년에 40~50회 외국 연주를 해야했어요. 그 열광 속에서 ‘연주자는 음악으로 말한다’는 신념을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어요.”

각각 폴란드·스웨덴 태생의 아버지·어머니를 둔 야블론스키의 ‘주특기’는 그리그(노르웨이 작곡가) 처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정이 녹아있는 작품 혹은 라흐마니노프·차이콥스키 등의 로맨틱한 음악이었다. 야블론스키는 “청중을 열광케 하고 나도 쉽게 연주하는 레퍼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요즘에는 무조건 ‘옛날’로 가려해요. 베토벤보다는 모차르트, 모차르트보다는 하이든을 파고듭니다. 엄격한 고전 시대의 곡들이죠.”

거대 음반사인 데카를 벗어나 자신만의 레이블 ‘알타라(Altara)’를 만든 것도 일종의 성장통을 겪은 후의 일이다.

“얼굴을 어떤 쪽으로 돌리고 피아노 앞에 앉아 사진을 찍는지까지 음반사에서 전부 관리했죠. 제가 발굴하고 싶은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그는 자신이 편하게 잘 연주하는 서정적이고 강렬한 작품만을 녹음 계획으로 내놨던 대형 음반사와의 계약을 끝냈다. 최근에는 여러 작곡가의 마주르카만을 모아서 녹음하는가 하면 동생인 피아니스트 패트릭(34)과 함께 듀오 앨범도 내놨다. 지휘와 실내악 무대까지, 그는 ‘아이돌’을 벗어나 자유롭게 무대를 누비고 있다.

시끌벅적하던 내한 무대도 이제 한적하다. 다음 달 1일 야블론스키의 독주회는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다. 400석 남짓해 아담한 공연장이다.

그는 “위대한 작품들은 대부분 작은 공연장에서 연주하도록 작곡됐다”며 기대를 보였다. 이번 연주회는 하이든으로 시작해 쇼팽으로 끝난다. 재즈 연주자였던 아버지에게 4세 때 드럼을 배우며 음악을 시작한 야블론스키는 “이번 앙코르 곡으로는 재즈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2일엔 부산에서 연주한다.

김호정 기자

◆피터 야블론스키=스웨덴 태생의 피아니스트 재즈 연주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4세에 드럼을 시작, 7세에 뉴욕에서 재즈무대에 선 경력도 있다. 런던왕립 음악원에서 피아노, 작곡, 지휘를 공부했으며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의 눈에 띄어 함께 데뷔 앨범을 냈다. 샤를르뒤투아, 발레리게르기예프 등 세계적 지휘자들과 협연했다. 현재 스웨덴의 칼스크로나 실내악축제의 음악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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